[변호인 리포트] 국민에 대한 보호의무, 재판절차진술권을 저버린 국가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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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8 07:27  |  수정 2017-09-05 10:20  |  발행일 2017-07-28 제8면
20170728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이 임무는 헌법이 부과한 준엄한 명령이다(헌법 제10조 제2문). 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 정부는 지대한 비난을 용인해야 하고, 국민은 선거를 통해 국가의 조직과 기능을 재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다. 물론 비상적 조치로 신임을 회수해 탄핵할 수도 있다. 원래 국가 권력은 국민의 것이며, 잠시 맡겨둔 것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떠한 방식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가. 대외적으로는 군사와 외교를 통해 적으로부터 영토와 국민을 수호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치안의 완성과 범죄예방을 통해 사후적으로 철저한 수사와 신속한 공소제기를 통해 범죄를 막고 피해를 회복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정의를 구현하고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헌법 제27조제4항)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수사의 생명은 신속성과 정확성이고, 피의자를 발견·체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자백 여부에 구애되지 말고 과학적 방법으로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수사주재자이자 공소권자인 검사는 경찰의 수사가 지연, 미흡할 경우 수사지휘와 직접 수사를 통해 공소제기에 필요한 증거를 면밀히 수집해야 하고, 범죄의 의심이 있는 사건에서 함부로 수사를 종결해서는 안 된다.

최근 공소시효 완성으로 무리하게 특수강도강간으로 기소해 무죄가 선고된 스리랑카인의 특수강간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의 입장이다.

1998년 계명대 학생이었던 피해자가 학교 주변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숨진 사건은 실은 강간 피해를 당한 뒤 벌어진 사고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교통사고로 사건을 처리했고, 유족의 반발로 수사가 일부 더 이어졌지만 수사기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족들이 100여 회에 걸쳐 탄원을 하고 경찰을 직무유기로 고소한 후 불복절차를 밟으면서 비로소 수사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고지점 인근에서 발견된 속옷이 피해자의 것이 맞다는 점(혈흔 일치)과 남성의 체액이 검출됐음이 드러났다.

경찰은 당시 국과수의 감정결과, 사고 당시 피해자의 도피경로상의 특이점, 피해자의 의복 상태를 토대로 특수강간죄로 인지 후 초기부터 면밀한 과학수사를 했어야 했다.

피해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참고인 조사, 피해자의 구체적 동선 조사, CCTV, 고속도로 통행차량 운전자의 광범위한 진술 확보, 주변 성범죄 전과자 및 유사한 성범죄로 수사 중인 사건 모두에서 폭넓게 용의자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당시에는 DNA 대조가 불가능했다는 변명은 할 필요가 없다. 유족이 소망하고 바랐던 점은 공정하고 바른 수사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런 사건의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입법이 되더라도 이 사건 피해자의 유족은 억울함을 풀 수 없다. 국가는 보호의무 위반과 수사미진을 고백하고, 유족에게 배상과 사과를 해야 한다.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법학박사) www.broth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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