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허 찔린 文정부의 ‘박정희 패싱’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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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7   |  발행일 2017-11-27 제30면   |  수정 2017-11-27
朴백돌 기념우표 발행취소
대학생들이 제작판매 대박
새마을 해외원조사업 축소
亞지도자들 감사로 원위치
교각살우 적폐청산은 안돼
[송국건정치칼럼] 허 찔린 文정부의 ‘박정희 패싱’

#장면1= 우정사업본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로 작년에 결정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지난 7월 계획을 철회했다. 당시 남유진 구미시장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며 항의하는 등 반발이 있었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대신 기념우표를 만들었다. 우체국 ‘나만의 우표 만들기’ 서비스라는, 국민 누구나 개인부담으로 우표발행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활용했다. ‘한국대학생포럼’ 소속 학생들이 크라우드펀딩(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시작했다. 계획공지 25일 만에 6천여명으로부터 2억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우표 3만세트를 제작해 2만세트는 펀딩 참여자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1만세트를 일반인에게 한 세트당 1만원에 팔았다. 3천여명이 몰려 사흘 만에 완판됐다.

한국대학생포럼은 이명박정부 초기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을 때 캠퍼스에서도 현실의 문제를 옳게 진단하고 공부하자는 취지로 모인 학술 동아리라고 한다. 이번 우표 제작도 “대통령 기념사업은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행동하는 청년보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체가 기성세대의 협량(狹量)을 통렬하게 꼬집었지만 그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펀딩 시작 한 달이 채 안돼서 6천여명이 2억원(한 명당 3만3천원꼴)을 갹출하고, 인터넷 판매 사흘 만에 3천여명이 구매행동에 나서 재고를 바닥나게 한 배경에 주목한다. 우표 수집가들의 참여도 부분적으로 있었겠으나 큰 틀에선 서슬퍼런 분위기 속에서도 박정희 탄생 100돌을 추모하는 마음들이 사회 곳곳에 낯을 가린 채 퍼져 있음을 읽기에 충분하다.

#장면2= 5·9 대선 직후 문재인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사업을 사실상 전면 중단시켰다. 특히 외교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ODA(공적개발사업) 중 새마을운동 사업을 단계적으로 없애겠다는 방침을 보고하기도 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후진국에 새마을 깃발을 내걸고 우물을 파주거나 학교를 지어주던 사업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KOICA의 새마을운동 관련 원조사업 26개 중 16개가 폐지됐다. 그런데 이달 중순 문재인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다녀온 후 미묘한 상황변화가 생겼다. 대폭 삭감이 예고됐던 내년도 새마을 ODA사업 예산이 되살아났다. 문 대통령이 아웅산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지도자들로부터 새마을 지원사업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받은 뒤 재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두 장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로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도 부정되고 있던 분위기의 부분적인 반전을 상징한다. 기념우표는 정서적인 차원이다. 박정희 시대를 추모하려는 정서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려고 하니 다른 통로를 통해 합법적인 방식으로 욕구가 표출됐다. 새마을 ODA 사업은 보다 실질적인 차원이다. 진보진영조차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박정희 시대의 업적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다. 그 노하우를 못먹고사는 나라에 전수해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을 ‘박정희 지우기’의 도구로 삼았다가 대통령 외국 순방 길에 깜짝 놀라 원위치 시켰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의 다른 분야에서도 목적 달성을 위한 조급함으로 교각살우(矯角殺牛)를 하는 일은 없는지 냉철하게 점검해 볼 시점이다. ‘대학생포럼’이나 ‘아웅산수지’가 또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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