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1987’그리고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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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3 08:25  |  수정 2018-01-23 08:25  |  발행일 2018-01-23 제25면
[문화산책] ‘1987’그리고 궤도
김성민<동시인>

‘지구는/ 왜 맨날 같은 길로만 맴돌까?// 그야 지구는 날마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198,769,757,922번째로/ 달에서 출발한 토끼가/ 지구에 별 탈 없이 도착하기를//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난생처음 집에 오는 막내 토끼니까’(‘궤도’전문)

영화‘1987’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벌써 누적 관객 수가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대중적 상업영화가 또 하나의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1987년은 지금으로부터 겨우 30년 전이니까 그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만 해도 1987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입학한 뒤 선배들로부터 보고 들었던 시국에 대한 말들은 정말 놀라웠고 무서웠습니다. 날마다 거리와 교정에 자욱하던 최루탄 가스를 마셔야 했던 대학생활이었습니다. 얼굴이 불에 덴 것 같았던 기억과 눈물 콧물을 쏟아내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즐겨 부르던 노래는 민중가요였고, 선술집에서 많은 사람이 그 노래로 하나가 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1987’을 많은 관객이 찾는 이유는 우선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일 겁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6월 항쟁을 다룬 최초의 영화인 것도 또 한 가지 이유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두 인물만이 주인공인 영화가 아니라는 게 이 영화가 가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각자 배역의 비중은 전체 영화에서 경중의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수없이 많은 이름 없는 분들의 희생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 대해 이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들은 동의하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쓴 동시를 맨 위에 두었습니다. ‘궤도’라는 동시인데요. 3연 1행에 나오는 198,769,757,922란 숫자는 이한열 열사와 관련된 숫자입니다. 연세대 캠퍼스에 가면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는 숫자인데요. 그 의미는 순서대로 이렇습니다. 198769 그러니까 1987년 6월9일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쓰러진 날이고요. 다음에 나오는 7월5일은 숨을 거둔 날. 7월9일은 장례를 치른 날이고, 그해 나이가 22세였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미약하나마 그 의미를 제 시에 새겨두고 싶었습니다. 결국은 보잘것없고 작은 힘들이 모여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동시로 오늘 글은 마칠까 합니다.

‘이건 한두 마리가 만들 수 있는 냄새가 아니다// 수천수만 마리가 힘을 모아, 떼로 덤벼// 꼬르륵을 만들어 내는 냄새다// 오, 대단한 멸치 떼!’ (‘멸치볶음’전문)

김성민<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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