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적폐청산론’과 야당의 ‘정치보복론’이 팽팽히 맞서온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재판에서 징역 24년이란 중형이 떨어졌음에도 대구·경북 민심은 비교적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한때 지역을 대표했던 정치인의 몰락에 측은하고 안타깝다는 심정은 있지만 정권에 역풍을 일으킬 정도의 임계선은 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 선고 직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어제(6일) 재판에서 가장 가슴 섬뜩하게 느낀 사람은 지금 관저에 있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행간에는 앞으로 정권이 바뀌면 문 대통령에게도 정치보복이 가해질 수 있다는 암시를 깔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치보복 프레임을 재차 부각함으로써 그나마 박 전 대통령을 엄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때 보수진영의 대표 정치인
몰락에 안타까운 심정 느끼지만
책임 떠넘기고 혐의 부인 일관
재판과정 명분·실리 모두 잃어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민심은 의외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대한애국당(대표 조원진 의원)이 주도한 주말 태극기집회도 8일 서울역, 광화문 등지에 집중됐다. 대구경북에선 오히려 책임당원 현장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7~8일)가 진행 중인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에 정치권 이목이 더 쏠려 있는 모양새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TK 정치인들을 상대로 정치보복을 가했을 때 지역민심이 들고 일어나고 자민련 녹색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럴 것 같지 않다”면서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재판을 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리는 양형(量刑)에서 중형이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명분 면에선 박 전 대통령이 한때 보수 진영의 대표 정치인으로서 정체성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과 맞물려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신 재판이 정치보복이라는 입장이라면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로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좋았을텐데 법적 책임을 부하들에게 미루고 자신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에서 보수층의 실망감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베일이 걷히고 최순실씨와 국정운영을 논했던 실상이 드러난 점도 보수 지지층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보수진영은 조국 근대화를 이끈 산업화 세력으로서 강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역할인식이 부족했고 역량도 모자랐던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치고 있다”면서 “(보수진영은) 가위눌림 같은 이 긴 터널을 하루속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대구권의 한 초선의원은 “(대구·경북 민심이) 외형상으로는 차분하게 보이지만, 속마음은 좀 다르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보수정권에 대한 무리한 정치보복적 행위가 계속되는데 대해 지방선거 때 투표라는 합법적 정치행위를 통해 속마음을 보여주겠다고 불만을 삭이고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한다”며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놨다.
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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