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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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9   |  발행일 2018-06-29 제40면   |  수정 2018-06-29
푸른 점 하나하나 짙은 향수…어린 시절 친구 등 다시 볼 수 없는 것의 그리움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김환기가 1970년에 선보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바로 화가 김환기(1913~1974년)의 작업일기 일부분이다. 밤하늘에 부유하는 푸른 별들이 우주적 공간감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의 제목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다. 미국 뉴욕으로 간 김환기가 한국 화단에서 잊힐 무렵(1970년)이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화면 가득 먹빛처럼 짙고 푸른 점들을 촘촘히 채우며 밝아오는 여명에 사라져간 은하수와 작별했을 작가를 그려보게 하는 그림이 바로 이것이다. 땅의 일을 모두 마치고 하늘로 간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유행가 가사이기도 하다. 1980년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인기 포크 듀오 유심초의 두 번째 앨범 수록곡 중 하나다. 잔잔하면서도 흥겨운 멜로디와 애틋한 가사가 매력적이다. 1982년까지 세 번이나 재발매를 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은 이 노래는 바로 시(詩)가 그 출발점이다.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노래가사와 포개어진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의 그림과 유심초의 노래는 모두 김광섭 시인의 시와 연결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발점에 대한 기억은 모호해도 습관처럼 흥얼거렸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 새집인 셈이다. 바로 그림과 노래, 시의 위력이다. 김환기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무심코 찍은 점들 사이에는 잴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놓여있다. 푸른 점 하나를 찍을 때마다 작가는 짙은 향수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린 시절 친구들 얼굴도 하나하나 떠올렸다고 한다. 시공을 오가며 탄생한 점들인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명상적이고도 그리움의 정서가 묻어나는 이유다.

화가는 그림을, 가수는 노래를, 시인은 시를 짓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집을 짓듯 붓 한 터치가 화가에겐 기둥이고 대들보다. 가수와 시인이 노래 한 소절, 시 한 구절을 잉태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온 마음을 쏟아붓는 일은 그들의 일이며 천성이다. 가끔은 목청 돋우어서 강의도 한다. 영육이 허물거릴 것 같은 소진한 기력은 가진 것 이상을 주고 싶은 욕망이 화근이다. 지친 몸을 가누며 학습목표를 점검하던 강의실이 필자에겐 또 하나의 ‘집’이다. 친근함이야말로 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한다. 친근함의 강도는 누구를 만나는지에도 달렸다.

종강을 하던 날 입안에서 자꾸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맴돌았던 까닭이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볼 아이들이지만 종강은 늘 허전함과 함께 찾아온다. 세월이 가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 그들이 상담을 요청할 때가 있다. 질문은 대개 강의내용 안팎이지만 그 이상의 큰 고민 보따리를 풀어놓을 때면 덩달아 가슴 아프다. 그럴 땐 스승(극재 정점식 )의 삶을 상기하곤 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남들이 모르는 그림을 그리느니, 철 든 사람이 돈도 되지 않는 그런 그림을 그린다느니 하는 말들을 무던히 들으면서 오십 평생을 살아왔다. 사회적인 조리로 따진다면 당연한 충고이고 감사하다. 그러나 예술은 그와는 다른 경지에서 영위되는 세계라고 믿는다. 이런 역경에서 나는 어떤 삶에 대한 저항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저항을 생명에 대하는 원리, 말하자면 삶의 호흡과 마찰되는 데서 오는 가벼운 보람을 느끼고 살아온 것이다.” 스승이 남긴 말씀이다.

어린 벗 로지와 알렉스는 성인이 된 후에도 친한 친구로 지내다가 각자의 삶을 찾아 멀어지지만 결국 다시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러브스토리가 있다. 바로 영화 ‘Love Rosie’이다.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사람’을 ‘집’으로 바꿔 읊어보면 어떨까. 좋은 집보다 좋은 가정을 지으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과 집, 가정이 거기서 거기이니 큰 무리는 아니지 싶다. ‘Love Rosie’에서 남자 주인공인 알렉스가 여자 주인공 로지에게 한 말은 이렇다.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진심을 다해 널 사랑하고 지켜줄 그런 사람이야. 넌 심장이 뛸 때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 너를 계속 생각하는 사람, 네가 하루 종일 무얼 할까, 어디에 있을까, 누구랑 있을까, 괜찮을까, 매일 매 시간을 생각하며 보내는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마땅해! 너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너의 모든 부분, 특히 너의 단점마저도 사랑해주는 사람 말야.”

만남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다. 영역의 분리와 사회적 제약이 따르긴 해도 소중하다. 그곳이 카페든 강의실이든 성장하는 학생들과의 만남을 특히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한 예술가가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이유다. 사랑하는 친구가 진정으로 사랑받는 사람이길 바라는 벗 알렉스의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든 밤하늘의 무수한 별만큼의 그리움으로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는 말이 아깝지 않은 인연이 바로 학생들이다. 라틴아메리카나 개발도상국의 농부들이 집을 잠자고 물건을 저장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장소로 여긴다면, 필자에게 집은 순수한 열정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학생들을 만나는 강의실이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미래를 다져가는 집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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