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산단 최악의 불황] (하) 희망의 불씨는 있다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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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2 07:24  |  수정 2018-08-02 07:25  |  발행일 2018-08-02 제3면
산업 인프라 축적 반세기 ‘여전히 기업투자 최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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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반도체 관련 기업 근로자가 장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②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위)와 산동면 일원에 조성 중인 구미산단 5단지 하이테크밸리 전경. ③ 장세용 구미시장이 구미국가산업단지 근로자와 악수를 나누며 격려하고 있다. ④ 구미산단 제조업체 근로자들이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구미시 제공>

오랜 불황에 신음 중인 ‘수출도시’ 구미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기업의 ‘굿바이 구미’다. 이 때문에 구미국가산업단지 수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공장 매물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 조성 중인 구미국가산단 5단지(하이테크밸리) 분양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설상가상 최근엔 삼성전자의 ‘구미1사업장 네트워크 사업부 수원 이전’ 선언에 구미시민과 경제계는 깊은 배신감과 좌절감에 빠졌다. 구미 경제를 다시 일으킬 묘책은 없는가. 넋을 잃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다. 인구 42만명의 구미는 평균 연령 36세로 여전히 ‘젊은 도시’다. 또 3천200여 기업 10만여 명의 근로자가 고부가가치 산업을 이끌어 가는 대한민국 대표 성장동력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반세기 축적돼 온 산업 인프라는 아직까지 구미가 기업투자의 최적지임을 대변해준다.

◆하이테크밸리 성과·전망

구미에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할 5단지 조성사업은 산동·해평면 일원 933만7천㎡(283만평)에 총사업비 1조7천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1단계(산동면)·2단계(해평면) 공사로 나뉜다. 현재 진행 중인 1단계 공사(375만4천㎡·114만평)의 공정률은 92%다. 산업용지 공개분양은 지난해 8월 1차를 시작으로 최근 3차까지 진행됐다. 지난 1년여간 공고된 산업용지 면적만 봤을 때 55만4천㎡(16만7천평) 가운데 31만8천㎡(9만6천평)가 분양돼 57.5%의 분양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도레이첨단소재(26만9천㎡·8만2천평)를 제외하면 분양된 산업용지는 4만9천㎡(1만4천평)에 불과하다.


■ 하이테크밸리 성과
분양가 저렴 실적 반전 분위기
PL&J케미칼 투자 결정 ‘단비’
성서산단 입주사도 이전 앞둬

■ 외국기업 지속 투자
4단지 外投지역 무상임대 혜택
도레이 등 글로벌 기업 들어서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에 한몫

■ 장세용 시장 역할론
TK 유일 민주당 소속 기초長
국비·성장동력 확보 동분서주
정부 SOC분야 전폭지원 기대

■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여가생활 중시 ‘워라밸’ 시대
레저·문화·소비 산업 활성화
기업·근로자 ‘脫구미’ 막아야



5단지 산업용지 분양 실적이 미미하지만 그렇다고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미시가 5단지 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국내외 기업 유치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시가 지난달 30일 <주>PL&J 케미칼과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단비’와 같은 일이었다. PL&J 케미칼은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신규법인이다. 2020년까지 350억원을 투자해 근로자 10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5단지 내 2만3천800여㎡(7천200여평)에 2020년까지 공장을 완공해 탄소소재를 활용한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그동안 수차례 5단지 현장실사·실무협의를 통해 입지·투자 여건과 기업지원 현황을 확인했다. 특히 기존 울산을 떠나 구미5단지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의미가 크다. 최동문 구미시 투자통상과장은 “울산에 있던 업체가 신규법인을 구미5단지에 설립하는 것은 울산산단보다 분양가가 낮은 것은 물론 투자여건이 탁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대구 성서산단에 있던 A사도 지난해 9월 구미5단지 내 4천300여㎡의 산업용지를 분양받고 이전을 앞두고 있다. 성서산단은 산업용지 3.3㎡당 거래가가 400만~600만원에 이르지만 구미5단지 분양가는 86만원으로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A사는 성서산단 공장 매각으로 발생된 자금을 시설 투자 등 용도로 사용했다. 배병주 한국수자원공사 구미사업단 차장은 “5단지 분양가가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는데 이는 맞지 않다. 인근 일반산단 분양가와 국가산단인 5단지 분양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나쁘다보니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배 차장은 “많은 시민이 삼성·LG·도레이 같은 대기업 유치를 희망하고 있지만 대기업을 유치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계속해서 대기업에 의존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꿔 강소기업·중견기업을 5단지에 유치해 메워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기업 ‘새 희망’

구미국가산단의 또 다른 매력은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4단지 내 외국인 투자지역이다. 외투지역은 외국인 단독 투자기업이나 외국인 투자지분이 30% 이상인 합작기업, 외국인 투자금액이 1억원 이상으로 입주 전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등록된 제조업은 입주가 가능하다. 외투지역은 산업용지 50년간 무상임대 등 혜택이 주어진다. 현재 4단지 외투지역(174만8천㎡)엔 도레이첨단소재 3공장·아사히글라스·델코배터리 등 24개 글로벌 기업들이 155만2천㎡에 입주(잔여면적 6필지·19만6천㎡)해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은 해외 자본 유입은 물론 고용창출, 수입대체 효과, 국내 기업과의 동반성장 등 지역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어 구미시는 외국인 투자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구미시는 지난달 2일 외투기업 쿠어스텍코리아와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반도체 장비부품 세라믹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2019년까지 472억원 투자와 함께 120명을 고용할 예정이다. 이어 지난달 20일엔 도레이 배터리 세퍼레이터 필름 코리아 유한회사(이하 도레이BSF코리아)가 4단지 외투지역에 위치한 구미공장에서 이차전지용 배터리 세퍼레이터 필름 ‘SETELA TM’ 신규 라인 준공식을 가졌다. 도레이BSF코리아는 일본 도레이 주식회사가 100% 출자한 외국인 투자기업이다. 2008년 회사 설립 후 약 6천억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해 400여 명의 직접 고용을 통해 지역 경제발전과 청년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에 839억원을 투자해 증설한 생산라인을 준공한 이 회사는 2020년까지 약 2천2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TK 유일 여당 시장 ‘역할론’

장세용 구미시장은 대구·경북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다.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40.8%를 얻은 장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를 2.1%포인트 차로 꺾고 당선됐다. 구미의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기대를 안고 출범한 민선 7기 장 시장은 취임 한 달을 맞았다. 장 시장은 지난 1개월 동안 국비 확보를 위해 중앙부처와 국회를 분주히 찾았다. 대규모 투자 유치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비 확보에 사활을 거는 것은 산단 발전에 필요한 △KTX 구미 접근성 향상 △5산단 분양 활성화 등을 위해서다. 이와 관련, 장 시장은 지역 신성장사업·SOC 사업 등 총 18건 4조원대의 국비사업 지원을 관계 부처에 요청했다. 또 여권 주요 당직자를 만나 당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건의했다. 특히 장 시장은 ‘기업 유치는 미래 먹거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 5단지 기업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 결과 쿠어스텍코리아·PL&J케미칼과 투자 협약을 체결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냈다.

◆‘머무르고 싶은 도시’ 거듭나야

최근 불거진 ‘구미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이전’ 논란은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대기업 탈(脫)구미’를 막을 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앞으로 구미를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50년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다면 앞으로 50년은 다양한 산업의 조화로운 성장은 물론 소비·문화가 어우러진 도시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정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은 “구미는 더 이상 일만 하는 공장이 아니라 일과 여가를 함께할 수 있는 ‘문화도시’로 발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편리한 교통 인프라 확충은 물론 대형백화점 유치, 금오산·낙동강을 활용한 관광·레저산업 활성화를 통해 ‘머무르고 싶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 전략은 존중하되 대기업 수도권·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선 구미의 ‘매력’을 키워나갈 필요도 있다. 조 회장은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땐 납품처와 물류, 용수, 전력 등 많은 요소를 고민하지만 그중에서도 ‘우수한 인력을 지역에서 채용할 수 있는가’ ‘수도권 고급 인력이 해당 지역에서 근무를 기피하지 않는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구미가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닌 연구개발 중심의 IT단지로 나아가기 위해선 우수한 인재가 몰려드는 ‘머무르고 싶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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