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 더 빛난다…나이듦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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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1 07:53  |  수정 2019-08-01 07:54  |  발행일 2019-08-01 제16면
■ 실버세대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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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드라마의 정형성을 깨고 노인의 시선에서, 노인의 삶에 집중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혜자는 이 드라마로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올봄 방영됐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명대사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70대 노인의 마지막 내레이션인 이 대사는 많은 이들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다. 이 드라마가 남긴 것은 명대사뿐만이 아니다. 노인의 시선에서, 노인의 삶에 집중한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바야흐로 ‘고령사회’다. 문화·예술도 더이상 젊은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버’(silver·노년층을 뜻하는 말)가 문화·예술과 만나 반짝이고 있다.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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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실버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가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지난달 대구에서 팬 사인회를 하기도 했다.

노인 주인공으로 그들 삶 다룬 작품들
고독 등 가감없이 담아 새 흥행코드 부상
요리·농업 등 크리에이터로 스타 등극도

팔순 어르신 주인공 영화 ‘칠곡 가시나들’
대구선‘백세생활예술진흥원’도 첫발 떼


◆대중문화 속 ‘실버’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16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기대수명 연장 및 출산율 감소 등의 영향으로 2015년 12.8%에서 급격히 증가해 2026년 20%, 2037년 30%, 2058년 4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사회 속에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특성 때문일까. 대중문화 속에 노년층이 비중있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흥행 코드가 된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실버세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은 지금의 노년층들이 적극적으로 자아 찾기에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나이듦’은 사회적 굴레,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나이 지긋한 노배우들이 함께 유럽 등지로 배낭여행을 가는 국내 예능 프로그램은 벌써 몇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 프로가 됐다. 젊은이들의 상징과 같았던 배낭여행에 노년층이 도전한다는 발상이 신선함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실버 크리에이터’가 인기다. 인기 유튜버인 ‘박막례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식당을 운영하던 평범한 박 할머니가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솔직담백한 모습은 많은 이들을 박장대소하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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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물건이 그 가치를 재평가받으며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권영규 여사의 생활 공예작품 전시 포스터.

들었다. 일흔을 넘긴 박 할머니는 무려 100만명에 가까운 유튜브 구독자를 거느린 스타가 됐다. 얼마 전에는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고, 지난달 대구에서 팬 사인회를 갖기도 했다.

박 할머니 외에도 많은 실버 크리에이터들이 요리, 먹방, 농업 등 저마다의 콘텐츠를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서거나 노인의 삶을 독특하고 개성있게 다룬 영화나 드라마, 책도 인기다. 때론 노인들의 고독감, 소외감 혹은 치매 등 질병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묵직한 숙제를 던지기도 한다.

한 노인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낸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마니아층이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고, 드라마 주인공 배우 김혜자는 이 드라마로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 2월 개봉해 화제를 모은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은 팔순이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시인 할매’ 역시 호평을 받았다.

◆삶을 담은 ‘실버 예술’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도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르신들이 정갈한 솜씨를 담아 만들어온 물건들이 뒤늦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

지난 6월 대구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봉화 닭실댁의 손길전’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지난해 94세로 별세한 봉화 닭실마을 출신 고(故) 권영규 여사가 손수 만든 생활 공예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전시회는 올해 초 대구에서, 또 지난 4월 국회에서도 열린 바 있다. 특히 알록달록 천으로 솜씨 좋게 만들어낸 바늘꽂이에서는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난 4월 대구에선 어르신들의 생활예술 활동을 장려·지원하는 ‘백세생활예술진흥원’이라는 단체가 출범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공예, 회화, 조각, 사진 등 생활예술품을 발굴, 전시, 교육, 판매해 어르신들의 자긍심과 성취감을 높임과 동시에 어르신 일자리 창출, 세대 간 소통에 기여한다는 게 백세생활예술진흥원의 출범 취지다.

이헌태 백세생활예술진흥원 이사장은 “어르신들의 예술적 감각과 솜씨가 그냥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앞으로 생활예술분야에서 어르신들의 작품을 많이 발굴해 전시회 등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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