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황희 정승의‘다 옳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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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7 07:53  |  수정 2020-09-09 14:24  |  발행일 2019-10-07 제18면
“상대의 마음 풀어주려 억지로 사과하는 건 오히려 독”
무조건 사과는 내 마음 속 화 키워
너도나도‘그럴 수 있다’는 걸 염두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에 사과해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황희 정승의‘다 옳다’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두 아이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지 가만히 들어봤습니다.

“주운 물건은 경찰서나 선생님에게 갖다 드려야 해.” “아니야, 그 자리에 그대로 둬야 해. 그래야 주인이 다시 와서 찾아갈 수 있어.” “그냥 두면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도 있잖아.” “다른 사람들을 왜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너는 왜 다른 사람을 다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좋아.” “주운 물건은 경찰서에 갖다 줘야 한다고 배웠잖아.” “길을 잃었을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어른들이 다시 찾으러 온다는 말 못 들었어?” “사람하고 물건하고 같아?” “잃었다는 게 같잖아. 뭐가 달라?”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서 경찰서나 선생님께 갖다 줘서 주인을 찾아주는 게 맞느냐,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둬서 주인이 스스로 찾아가도록 하는 게 맞느냐를 두고 생각이 다르네요.

다음 다툼도 한 번 보세요. 친구 사이인 아주머니 두 분이 다투고 있습니다. “나는 전화기에 저장된 번호를 잘못 눌러서 다른 사람과 통화가 되면 잘못 걸었다고 하지 않고 안부가 궁금해서 걸었다고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끊어. 실수로 잘못 걸었다고 하면 서운해 할 것 같아서 그래.” “그건 거짓말을 하는 거야. 잘못 걸었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끊는 게 정직한 거지.” “이런 걸 거짓말이라고 하면 안 되지. 이왕 걸었는데 인사라도 하면 상대방이 기분이 좋을 거 아니야.” “어쨌든 거짓말은 맞잖아.” “정직하다고 다 좋은 거 아니야.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면 좋아하겠어? 키 작은 사람에게 키 작다고 말하면 좋아하겠느냐고?” “니는 예를 들어도 꼭 그런 것만 들어. 니 고집은 정말 못 말린다니까.” “니는 상대방 말은 무조건 무시하는 그 버릇이 문제야.”

여기서도 여러분은 누구 생각이 옳은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알쏭달쏭하지요. 조선 세종 때 유명했던 황희 정승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두 여종이 서로 시끄럽게 싸우다가 한 여종이 황희 정승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상대방의 못마땅한 점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정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말이 옳다.” 잠시 뒤에 또 다른 종이 달려와서 역시 쫑알쫑알 일러바치니 황희는 그 여종에게도 “네 말이 옳다.”

옆에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보던 조카가 어정쩡하게 말하는 황희가 답답해서 “그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개는 이러하고 다른 아무개는 저러하니 이 아무개가 옳고 저 아무개는 그르다고 말씀하셔야지요.” 이러면서 따지고 나서자 황희는 다시 “네 말도 옳다.” 이러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황희 정승이 왜 그리 뜨뜻미지근하게 말했을까요? 귀찮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정말 세 사람 말이 다 일리가 있다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주운 물건을 두고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 말을 판단해 보라면 황희 정승처럼 ‘두 사람 다 옳다’ 할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전화를 잘못 걸었을 때 어떻게 할까 하는 의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때요? 이제 여러분은 황희 정승의 그 일화가 이해가 되지 않나요?

그렇지만 어떤 생각이나 의견을 두고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 그러니 다 옳다. 이럴 때보다는 어느 한 쪽이 옳다는 생각이 분명해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고 의견이 맞서게 됩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절대로 잘못된 게 아닙니다. 심하면 화내고, 싸우고, 삐치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뒤에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화내고, 싸우고, 삐치고 한 뒤에 어떻게 합니까? 사과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과를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 화가 풀릴 때까지 그냥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사과를 해서 서로 맺힌 마음을 푸는 게 훨씬 좋겠지요? 그래요, 사과를 하는 게 좋습니다만 문제는 사과를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흔히들 내 고집을 꺾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먼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라,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이러면서 사과를 하라고 하지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데 오로지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억지로 잘못했다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은 풀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마음 속의 화는 억울함까지 합쳐 더 커집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자칫 비굴해지고 교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과는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는 뜻도 있지만 진짜로는 내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바로 황희 정승의 ‘모두 옳다’를 써 먹으라는 말입니다. 내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 되어서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잊었다는 것에 대한 사과를 하라는 겁니다. 이게 진짜배기 사과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말 미안하다는 마음이 우러납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커지고 성큼 자라게 됩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는 말의 진정한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황희 정승의 ‘다 옳다’를 잘 써먹으면 어른들 역시 싸우면서 크게 됩니다. 성찰이 됩니다.

윤태규<동화작가·대구세현초등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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