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前 교육부 장관)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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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6   |  발행일 2019-11-16 제22면   |  수정 2019-11-16
“계층 사다리 못 만드는 교육…‘맞춤·프로젝트학습’ 대전환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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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KDI 교수가 최근 열린 유엔글로벌교육재정위원회 서울회의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시 의혹 사건으로 야기된 교육 불공정에 대한 불만과 사회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총선을 앞두고 ‘당사자’가 많은 교육문제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입 ‘정시 확대’를 지시하는 등 그동안의 정책방향을 급선회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때문에 교육현장은 한층 더 혼란스럽다. 방향성을 잃은 우리 교육의 갈 길을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에게 묻는다. 그는 청와대 교육과학문화 수석비서관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장관 등을 역임하며 현 교육 제도의 토대를 닦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하이터치 하이테크(High-Touch High-Tech)’ 학습의 지구적 확산에 몰두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작금의 교육현장 혼란과 관련, “교육을 통해 계층 사다리를 만들고 사회 통합을 이뤄내려면 교사와 가르침에 집요하게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교 시스템 ‘공장형 수업’ 머물러
사교육 등으로 학력 유지되는 현실
저소득층 학생이 가장 큰 피해입어

가르침 훈련 대신 임용고시 매달려
전문 교원 양성제도 개혁 논의해야

강은희 교육감 교실 변화에 적극적
지역 학생들 대구발전 밑거름될 것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의 교육제도가 엄청나게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현재 그 칭찬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나.

“사실 제가 장관 재임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칭찬을 많이 해서 부담이 많이 됐다.(웃음)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한국은 교육강국이다. 이대로 가면 세계적으로 청년층 절반 정도인 8억명 이상이 앞으로 2030년 되었을 때 중등교육의 기초 실력도 못 갖추고 성인이 된다. 학교를 못 다녀서가 아니라 학교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서다. 한국은 학부모의 관심과 사교육 등으로 학생의 학력이 유지되고 있지만, 우리도 교사의 가르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글로벌 학습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몇 해 전에 핀란드의회 미래위원장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가 핀란드 교육을 설명하면서 ‘한명의 낙오자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 주는 울림이 매우 컸다. 우리 교육도 그렇다고 할 수 있나.

“개발도상국의 빈곤 연구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 명의 경제학자들이 주목하였던 분야는 교육이었다. 이들 중 마이클 크리머 하버드대 교수는 케냐에서 교과서를 무료로 보급한 정책이 상위 20% 학생의 성적만 올렸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교사의 교습 방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한 빈곤 퇴치 수단이라고 했다. 지금의 우리수업 방식도 이와 비슷한 ‘공장형’이다. 하루빨리 인공지능(AI)이 지원하는 맞춤학습 시스템을 도입하여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추어 개별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대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저학력의 저소득층 학생이 가장 피해를 본다.”

▶결국 공교육에서 해내야 할 문제이다.

“집안이 좀 여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소득이 높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된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개천에서 용 나지 못한다. 교육의 ‘계층 이동 사다리’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 핵심은 선생님의 가르치는 방식에 있다.”

▶AI가 지원하는 맞춤학습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그런데 그동안 학교에 보급된 스마트교육, 에듀테크가 성공을 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여기에 따라서 교사의 역할도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이터치 하이테크’ 학습으로 교육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학습자별 수준과 수요에 맞춘 맞춤학습과 프로젝트학습을 통해 진짜 세상에서 필요한 능력을 길러낼 수 있다. 이미 ‘하이터치 하이테크 학습’을 베트남 학교에 적용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고 곧 우루과이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라 대학교육도 많이 바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 입시제도로 나라가 분열되어 있는데 대학사회가 힘을 합쳐 다 함께 풀어나가야 할 일이 많다. 최근 대학에서 무크(MOOC)가 활발해지고 있다. 무크는 사이버상에서 공짜로 강의가 제공되는 것이다. 코스 끝나고 자격증 받을 때 소정의 비용이 들 뿐이다. 요즘 ‘사이버 시큐리티’ 자격증은 기업에서 인증해 주어 인기가 폭증하고 있다. 새로운 대학모형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맞춤형 교육을 통해 3만명이었던 학생이 10만명까지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들의 불공정에 대한 외침을 교육제도 때문으로 본 듯한데.

“제도 때문만이 아니다. 교육제도에 걸맞게 교사의 역할이 많이 바뀌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제도를 바꿀 때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또 제도를 아무리 정교하게 해도 부작용은 생기게 마련이다. 제도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는 시행령을 변경해 2025년까지 완전 폐지하겠다고 하는데.

“자사고 제도를 도입할 때 교실에서 아이들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들에게 폭넓은 자율을 주어서 더 좋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고려됐다. 서로 협력할 줄 알고 상대편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입시사정관제가 도입됐고, 학종 평가로 이어졌다. 그런 제도에 못 따라간 것은 교사의 수업과 평가 방식이다. 선생님들이 프로젝트 학습을 훨씬 더 많이 활용하여야 한다. 프로젝트 학습에서는 아이들을 잘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평가가 정확해질 수 있다. 결국 입시제도의 문제로 왔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수업을 잘 하느냐의 문제로 집중해야 한다. 근본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교대, 사대 학생들은 임용고시에 매달리면서 제대로 학습방법을 훈련받는지 의문이다.

“저도 이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해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상위 1% 안에 있는 아이를 교사후보로 충원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노량진 학원 공부’에 골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핀란드가 세계 교육 1등이 된 비밀은 우리와 다르게 3박자가 갖춰진 교사교육에 있다. 이론, 실습, 연구기능이 다 있다. 우리도 전문 석사 과정으로 안할 이유가 없다. 정치권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교원양성제도 개혁을 논의하여야 하는데 정치는 진영싸움만 하고 교육계는 정치 탓만 하는 듯해 아쉽다.”

▶대구경북의 인구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경북 활성화를 위한 교육 정책에 대해서 조언하면.

“대구 하면 잊을 수 없는 것이 2011년 겨울 정말 충격적인 학교 폭력사태로 중학생 한명이 자살한 비극적인 일이다. 대구시민들도 아마도 못 잊을 것이다. 충격적이었고 전국 학교 폭력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계기가 됐다. 역시 핵심은 수업방식이다. 프로젝트 교육을 통해 서로 협력하는 훈련을 많이 시키면 문제가 크게 줄어든다. 학생들의 협력과 소통능력이 좋아졌고, 선생님들의 자기 효능감도 크게 향상됐다. 대구에서는 우동기 전 교육감에 이어 강은희 교육감이 프로젝트학습, IB과정 등 교실의 변화에 적극 나서면서 수업방식 변화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학교 질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역발전의 핵심이다. 교육을 통한 대구활성화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1961년생 △대구 청구고 △서울대 무역학과 학사 및 석사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現) △미국 콜게이트대 석좌교수 △제17대 국회의원(비례대표·한나라당)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 수석비서관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제3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유엔 글로벌 교육재정위원회 커미셔너 △유엔 교직발전위원회(EWI)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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