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연말과 건강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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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4   |  발행일 2019-12-04 제31면   |  수정 2019-12-04

이래저래 모임이 많은 연말이다. 마시기 싫어도 분위기를 위해 술 서너잔쯤은 마셔야 하고 한해가 가는 아쉬움을 평소 잘 먹지 않는 특별한 음식으로 달래기도 한다. 그래서 술과 다양한 음식으로 인해 간에 부담을 주고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는, 그야말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시기가 연말이기도 하다.

한국사람은 유독 건강에 관심이 많다. 그 정도가 심해 건강염려증이 의심되는 이들도 적잖다. 2017년 세계보건기구와 영국의 한 대학이 함께 세계인의 수명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2030년 기대수명이 90세를 넘는 나라는 한국(여성)뿐이었다. 여러 장수비결 가운데 하나로 ‘건강염려증’이 꼽혔다.

보건복지부의 ‘OECD 보건통계 2019년’ 자료에서도 한국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잘 드러난다. 국민이 1년간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16.6회로 OECD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입원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수도 18.5일로 OECD 평균(8.2일)의 2배 이상이었다. 이렇게 관리를 잘하고 있으니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이 29.5%로 가장 적었다. 주요 질환 사망률 등이 OECD 평균보다 낮아 건강지표는 양호한데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다. 객관적 건강상태와 주관적 느낌은 확실히 다른 듯하다. 이에 비해 호주, 미국 등은 90% 정도가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지표들을 보면 한국사람은 ‘쓸데없는 비관주의자’, 미국과 호주사람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건강염려증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자칫 과잉 진단으로 흘러갈 수 있다. 자신의 병리적인 증상에 대한 의사의 진단을 신뢰할 수 없어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는 ‘닥터쇼핑’에 이르기도 한다.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실제보다 심각한 병이 걸려있다고 생각해 사소한 증상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의사의 말도 믿지 않는다. 세상에서 의사마저도 믿지 못한다면 어찌 두렵지 않을까.

그런데 참 웃긴다. 한국인의 건강염려증이 연말만 되면 은근슬쩍 사라진다. 폭음과 과식이 건강염려증을 기억 저편으로 몰아내버린다. 오히려 이런 연말에 건강을 더 챙겨야 하지 않을까.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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