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조각·설치 작품...노진아의 '공진화 (Coevolution)'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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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8   |  발행일 2020-01-29 제22면   |  수정 2020-01-29
3월29일까지 대구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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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아 '진화하는 신 가이아'

요즘 대구지역 예술계 뿐 아니라 SNS상에서 가장 핫 한 전시 중 하나는 봉산문화회관에서 3월29일까지 열리고 있는 노진아의 '공진화 (Coevolution)'는 인터랙티브 조각·설치 작품전이다.

전시장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로봇은 '진화하는 신 가이아'다.
누운 채로 공중에 떠 있는 '가이아'는 인간을 닮은 거대한 기계 로봇이다. 상반신이 드러난 가슴 아래 부위로 마치 혈관처럼 붉은색 나뭇가지들이 길게 뻗어가며 자라나는 중이다. 그 주변을 돌아다니면 가이아는 큰 눈동자를 움직이며 관객을 쳐다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이아가 관객과 대화를 한다는 점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난 아직은 기계지만, 곧 생명을 가지게 될 거야, 당신이 도와줘서 생명체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면 말이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과 대화하고 있잖아. 나는 지금 진화하는 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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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노진아의 작품 '진화하는 신 가이아'와 관람객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는 인공지능과 딥러닝으로 이뤄진다. 관객이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이 웹서버로 보내져 응답 내용을 찾아 다시 음성으로 합성하여 가이아의 입을 통해 대답하는 시스템이다. 관객과의 대화는 실시간으로 백업되고 학습돼 시간이 갈수록 그 대답은 정교하고 다양해진다. 그렇게 로봇은 매 순간 조금씩 진화한다.

노씨가 조각과 뉴미디어를 접목하여 관객과 인터랙션하는 대화형 로봇이나 인터랙티브 영상을 작품으로 제작한 것은 2002년경부터다. 로보틱스를 미술작품에 구현해내기 위해 공학 박사까지 땄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기술 문명의 발달 안에서 재정의 되고 있는 인간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의 관계다. 이런 관계의 철학적 의미를 상호작용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기계와 생명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로봇은 인간이 되고 싶을까.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을 통해 작가는 로봇이 인간이 되고 싶을 리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혹 인간은 자신과 닮은 기계를 만들어 생명성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가이아'의 맞은편 공간에는 작가의 또 다른 인터랙티브 조각 '나의 양철 남편'이 있다.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 반기계 인간 '나의 양철 남편'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눈알이 움직인다. 몸의 일부를 하나씩 양철로 바꾸다가 결국엔 마음과 기억까지 잃어버리고 마는 '오즈의 양철 나무꾼'처럼 스스로 기계화 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무게에 대한 단상을 은유하는 작품이다.

인간이 되어가는 로봇, 기계가 되어가는 인간.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공진화' 상황을 통해 생명, 인간, 기계의 의미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감성적으로 질문하는 전시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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