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

  • 이은경
  • |
  • 입력 2020-02-14   |  발행일 2020-02-14 제23면   |  수정 2020-02-14

2020021301000533200021381
신지호 정치평론가

조직을 사랑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는 않는다. 검사 윤석열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의하면 나라와 임금은 충성의 대상이다. 그래서 임금을 나라님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윤석열에게 나라님은 충성의 대상이 아니다. 헌법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에게 충성의 대상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주는 헌법이다.

민주공화국이 선포되고 시행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되는 취임선서를 한 국회의원의 입에서 '헌법보다 의리'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왕조국가에서는 임금이 충성의 대상이지만, 계급이 철폐되고 법 앞에 만인 평등이 적용되는 근대시민국가에서는 국가의 정신이 담긴 헌법이 충성의 대상이 된다.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자유로운 시민은 오직 법에만 복종하는데, 그 이유는 타인에게 예종(隸從)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또 "지도자는 두지만, 주인은 두지 않는다"고도 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지도자이지 주인이 아니다.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충성과 복종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대통령의 권한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서 나온다. 권력의 주체인 국민이 헌법과 법률을 통해 위임했기 때문이다. '우리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행태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원리도 이해하지 못한 전근대적 사고가 낳은 재앙이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인치(人治)다. 상급자는 하급자를 법에 따라 지휘·감독할 수 있어도, 부당한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 민주공화국은 권력의 자의적(恣意的) 행사를 경계한다. 특히 그것을 이용해 타인에 대한 주종적(主從的) 지배를 시도하는 행위를 허용치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어느 누구도 굴종하지 않도록 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주종적 지배를 허락하지 않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기 위해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 법에 종속되어 있을 때는 자유롭지만, 타인에게 종속되어 있으면 자유롭지 못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법조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법치를 경시하고 있다. 그들은 법보다는 자신들의 '선한 의지'를 강조하며 그 선한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나라 최고 권부인 청와대의 위력을 악용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이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좌초시키기 위한 검찰 인사권 남용은 법의 지배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행위였다. 권력의 사유화는 민주공화국을 좀먹으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근간을 파괴한다. 현 정권이 기록할 흑역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아랫사람을 따스하게 대하는 것은 소중히 간직해 나가야 할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예종은 타파해야 할 폐습이다. 더군다나 권력과 금전을 매개로 굴종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법에 복종하고 민주공화국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종하거나 충성하지 않는다. 보수의 본고장이라 일컬어지는 대구경북은 그간 무엇에 충성해 왔는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성찰의 결과는 표심으로 나타나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이 대구경북의 새로운 출발이기를 기원한다.
신지호 정치평론가

오피니언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