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반환점은 없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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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6   |  발행일 2020-02-26 제26면   |  수정 2020-02-26
촛불혁명 출발한 정부라면
임기 초반이든 마지막이든
국민에게 시민혁명 정신을
제도·문화 통해 최선 다해야
이것이 文정부 진의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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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즈음부터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로부터 문재인정부가 반환점을 돌았다는 언급을 자주 듣는다. 당연하게도 이 말은 집권 초기이던 2년 반 전의 충만한 의욕과 사명감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어떤 지친 기색과 피로감, 그리고 좀 다른 의미로는 조금만 더 달리면 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안도감이 묻어난다.

한데, 반환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게는 한 가지 장면이 계속하여 떠오른다. 2018년 5월2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여부가 미국 내부의 반대로 미궁에 빠진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급거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을 방문했던 날이다. 그때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기자회견에서 대략 다음과 같이 답한 바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잘 될 것인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과연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미국 내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과거에 실패했다고 해서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비관한다면, 역사의 발전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때 문 대통령의 말 가운데 많은 국민의 가슴을 친 것은 바로 역사의 발전이라는 한 마디였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20세기 세계사의 질곡을 담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를 어떻게 해서든 평화와 공영의 시대로 발전시킬 것이며, 그 취지로 북한과 미국과 세계를 설득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대통령의 그 한마디가 명확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토대가 변하지 않는 한, 상황이 좋건 나쁘건, 임기의 중반이건 마지막이건, 바뀔 것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임기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 '역사의 발전'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민주화 이후 개혁을 지향했던 정부들만 보더라도 이 점은 명확하다. 신군부세력에 대한 과거청산을 마무리한 시점에서 세계화를 기치로 신한국 건설을 주창했던 김영삼정부나 6·15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의 압승을 기대했던 김대중정부의 사례는 분명한 실패 사례이다. 나아가 문재인정부가 복기의 대상으로 삼은 듯한 노무현정부조차도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소위 4대 악법을 고리로 한 보수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집권 후반기를 우왕좌왕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앞선 개혁 정부들의 실패는 어디까지나 문재인정부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 정부들이 집권 후반기에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데 미진했다면, 그것은 그대로 문재인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부터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표현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심각해지는 지금, 그런 표현은 도무지 국민적 감수성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문재인정부가 2016년 가을에서 2017년 봄까지 진행되었던 촛불 집회를 '촛불 시민 혁명'으로 지칭할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으로 시민 혁명을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삼으려는 정부라면 임기의 초반이든, 중반이든, 마지막이든, 시민 혁명의 정신을 제도와 인물과 문화를 통해 실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지난 1년 동안 악전고투를 무릅쓰고 검찰개혁과 선거법개혁을 추진해 온 이 정부의 진의라고 믿고 싶다. 그런 뜻에서, 문재인정부에 반환점은 없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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