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갇혀서도 문화재 지켜낸 안동시설관리공단 직원 3인방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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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7 18:28  |  수정 2020-04-28 08:37  |  발행일 2020-04-28
안동체육관 이화준 관장, 경영지원실 박정영 차장, 이길호 기획감사팀장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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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길호 기획감사팀장, 안동체육관 이화준 관장, 경영지원실 박정영 차장

시뻘건 불구덩이에 갇혀서도 문화재를 지켜낸 안동시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안동체육관 이화준 관장, 경영지원실 박정영 차장, 이길호 기획감사팀장 등 3명이 주인공이다.

지난 24일부터 25일 오전까지 산불 진화에 동원돼 밤샘 작업을 마친 이들은 지난 25일 산불이 재발화된 지 1시간 만에 또다시 안동시 남후면 낙동강생태학습관으로 달려갔다.

재발화된 불은 전날 발생한 산불보다 규모뿐만 아니라 확산 속도도 빨랐다.

공단 직원 20여 명과 불길 한가운데 위치한 생태학습관 사수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순간, 이 관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생태학습관에서 500m가량 떨어진 "낙암정(洛巖亭)이 위험할 수 있다"는 안동시청 직원의 전화였다.

낙암정은 1451년(문종1) 배환(裵桓:1379∼?)이 건립한 정자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위치해 있는 경북문화재자료(제194호·1987년 12월 지정)다.

건물구조가 난간 기둥이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짧은 것이 특징으로 문화재 자료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곧장 낙암정 입구로 이동했지만, 산 중턱부터 내려온 불길과 연기 탓에 진입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 관장이 소화기를 뿌리면 무조건 내달리기 시작했고 박 차장과 이 팀장이 그 뒤를 따랐다.

우여곡절 끝에 낙암정에 도착했지만, 불길은 이미 낙암정 바로 옆 소나무 아래까지 덮친 상태였다.

소화기를 쏘고 갈퀴로 숲 풀을 헤집었지만, 불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관장의 요청을 받은 영양119안전센터 소속 소방차 한 대가 불길을 뚫고 낙암정 바로 아래까지 접근했다.

이 관장 등은 소방관 한 명과 함께 호스를 연결한 후 낙암정에 재진입하며 화마에 사투를 벌였다.

낙암정 주변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퇴로도 없었다. 목숨까지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

이 관장 등은 2시간 넘게 물을 뿌리고 갈퀴와 소화기로 불길 차단에 나섰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잿더미로 변했는데 낙암정 주위만 멀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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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지켜낸 낙암정

낙암정을 지나간 불길은 강한 바람 탓에 다시 생태학습관으로 향했다. 공단 직원 2명을 불러 낙암정 사수(?)를 부탁한 이 관장 등은 생태학습관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하자 생태학습관 앞 양파밭이 천금 같은 역할을 하며 불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물을 뿌리고 소화기와 갈퀴로 불길을 차단하며 사투를 벌였다.

바로 옆 밭엔 누군가 농기계와 휘발유가 가득한 말통을 두고 가버린 탓에 더 큰불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관장 등은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 밭으로 이동해 휘발유 통까지 제거했다.

이 관장은 "난생 처음 큰불을 겪어 뭐가 어떻게 됐는지 정신 하나도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차장과 팀장 모두 눈이 아파 오전에 병원 진료를 받았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문화재가 소실될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편 안동 산불이 발생하자 안동시시설관리공단 100여 명은 주택과 건물 등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남후면 단호리와 풍천면 인금리 일대 급파돼 진화 활동에 나섰다.

글·사진=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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