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위안부 문제 직무유기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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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5   |  발행일 2020-06-05 제23면   |  수정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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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정치평론가

이용수 할머니의 용기 있는 문제제기로 촉발된 '윤미향 사태'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본인의 강력한 부인과 집권당의 엄호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결국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회계부정 의혹은 서울서부지검이, 월북회유 의혹은 서울중앙지검이 담당한다.

그런데 윤미향 개인 및 정대협, 정의연 등의 문제와 별도로 과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7월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109명은 정부가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작위(作爲)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방기하고 있어서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노무현정부가 2005년 "위안부 배상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해 놓고도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

결론은 이명박정부 때인 2011년 8월에 났다. 헌법재판소는, 일본의 불법행위로 인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당한 자국민의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헌법에서 유래하는 정부의 작위의무인데 부작위로 인해 청구인들에게 기본권의 침해를 초래하였으므로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이명박정부는 이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본격적 노력에 착수했다. 천영우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증언에 의하면, 2011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위안부 문제로 인해 파행으로 끝나자, 노다 총리는 이듬해 특사를 보내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를 한분 한분 찾아뵙고 일본 총리의 사과 친서와 일본 정부 보상금을 직접 전달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으나, 국가책임 인정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되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위안부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 불가'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러다 1년 6개월에 걸친 협의 끝에 2015년 12월28일 위안부 합의를 만들어내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성 장관은 군의 관여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총리의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재단 설립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되었고 47명의 생존자 중 35명이 각각 1억원을 수령하였다.

그러나 김복동·이용수 등 일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 위로금 수령을 거부하였고, 정대협은 위안부 합의 파기를 주장하였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위안부 합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위안부 합의를 대표적인 외교 적폐로 규정하였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였다. 그러나 합의 파기를 공식화하지도 않고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자세를 지금까지 취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는 무력화시키면서 그 어떤 외교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굴욕적 합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국내 정치적 이득을 한껏 취해놓고 문제해결의 책임은 방기하는 직무유기라 아니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대로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행위는 '부작위에 의한 위헌'이다.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7명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전임 정권이 해놓은 것은 엎어버리면서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는 위선과 무책임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이것이 윤미향과 정대협의 일탈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중한 작업이다.
신지호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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