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文정부의 정책들, 속도의 함정에 빠졌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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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8   |  발행일 2020-06-18 제26면   |  수정 2020-06-18
최저임금과 탈원전은 과속
국가채무 증가도 너무 빨라
비핵화 진전없는 평화 협약
북한의 패악질 단초 제공
속도조절이 정책 성공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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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코로나19 팬데믹이 'K방역'이란 꽤 괜찮은 브랜드를 가져다줄 줄은 몰랐다. K방역의 성공은 탄탄한 공공의료체계, 앞서가는 디지털 인프라, 의료진의 헌신, 국민의 자발적 협조 등 4합(合)이 어우러진 결과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더해지면서 가속이 붙었다. 선진국조차 느려터진 대응으로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한국의 신속한 검체 검사와 확진자 동선 추적은 단연 돋보였다. 일본에선 코로나 검사가 선별적으로 진행됐고, 지난 4월 승인한 재난지원금 지급률도 이제껏 28%에 불과하다. K방역은 쾌도난마식 속도전의 승리였다.

빠른 속도가 언제나 능사는 아니다. 특히 문재인정부에선 정책 과속의 폐해가 크다. 최저임금, 탈원전, 대북정책이 그렇다. 시장 수용한계를 뛰어넘은 최저임금 인상은 취약계층 일자리 감소와 분배 악화를 촉발했다. 주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너무 서둘렀다. 김대중정부가 주5일제를 5년에 걸쳐 서서히 안착시킨 것과 대비된다.

탈원전 역시 과속이 문제였다. 원자력발전 비중이 급속히 낮아지는 사이 원전 생태계는 붕괴되고 마구잡이 태양광 패널 설치로 산림이 황폐해졌다. 원전 수출 차질은 물론 핵무장 잠재력까지 사라질 위기다.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정책은 백년대계여야 하거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설계는 단기적 안목인 데다 지나치게 조급했다.

안단테나 아다지오, 라르고의 느릿함이 주는 여유와 평온에 끌려서일까. 필자의 애청곡은 2악장이 압도적으로 많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21번 2악장, 드보르작 현악4중주 '아메리카' 2악장 등 다 읊자면 끝이 없다. 얼마 전 한 여행사가 '라르고'란 명칭을 붙인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유명 장소만 그냥 훑으면 여행의 진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 지역의 문화와 음식, 뒷골목까지 체험하는 '느린 여행'은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시행 속도는 대부분 알레그로(빠르게)다. 라르고 같은 여유와 꼼꼼함은 실종됐다. 그러니 정책이 겉돌고 헛발질이 빈발한다. 정작 속도를 내야 할 혁신성장이나 규제개혁, 노동시장 유연화는 미적댄다. 이면도로에서 과속운전으로 위험을 자초하고, 간선도로에선 속도를 낮춰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꼴이다.

대북 유화정책도 속도의 함정에 빠졌다. 비핵화 진전 없이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등 평화협약만 너무 빨리 나갔다. 속도의 비대칭이 북측 패악질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북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주방장 떨거지까지 나서 대통령과 우리 국민을 능멸하는 이유가 뭘까. 조건 없이 대북 규제를 풀라는 압박이다. 북의 적반하장과 패륜적 망동, 더는 보기 역겹다. 지금은 남북 합의 준수 따위의 '공자 같은 말씀'을 반복할 때가 아니다. 저들에게 날릴 말은 단호한 비핵화 촉구다.

국가부채 증가 속도도 정상은 아니다. 2년 후면 1천조원이라니. 문 정부 임기 5년 동안에만 370조원의 빚이 늘어난다. 가히 빛의 속도다. 한데 청와대와 여당은 확장재정을 멈추거나 속도를 조절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하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에서 25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외부 은하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초속 110㎞ 속도로 우리 은하로 다가오고 있어 40억년 후엔 두 은하가 충돌한다. 하지만 지구로 향하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돌진을 우리는 체감하지 못한다. 문재인정부가 실패한 정책의 과속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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