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진표의 시련을 생각하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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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2   |  발행일 2020-07-02 제26면   |  수정 2020-07-02
8세기 중엽 신라 고승 진표
온몸을 돌에 부딪치며 수행
'망신참법'으로 깨달음 얻어
상처·시련 기피하는 오늘날
혹독한 구도 역정 더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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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련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힘줄과 뼈를 수고스럽게 하며, 그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여, 그가 행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한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그의 성질을 굳게 참고 버티도록 하여, 그가 잘하지 못했던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련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매우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맹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시련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그릇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련에 맞서다 파멸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또한 조그마한 시련이라도 닥치면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회피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위대한 고승들처럼 깨달음을 위해 시련을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역대로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으로 위대한 자아를 성취한 사람들이 있었다. 4대 성인을 비롯한 선각자 대부분이 그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8세기 중엽 백제의 옛 땅인 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고승 진표(眞表) 역시 그러한 인물이다. 삼국유사 진표전간에 의하면, 그의 성은 정(井)씨이고, 아버지는 진내말, 어머니는 길보랑으로 12세에 출가해 금산사의 숭제법사에게 사미계법을 받았다고 한다.

진표는 더욱 나아가 보살로부터 계를 얻기 위해 이름난 산들을 두루 다니다가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불사의암에 가서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계를 얻는다. 망신참법은 자신의 육체에 엄청난 시련을 가하며 참회하는 것인데 "7일을 기한으로 온몸을 돌에 부딪쳐 무릎과 팔이 모두 부서지니 피가 바위 벼랑으로 비 오듯 떨어졌다. 그러나 보살의 감응이 없는 듯해 몸을 버릴 결심을 하고 다시 7일을 더 기약했다"라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이렇게 용맹정진하자 14일째 되던 날 지장보살이 나타나 정계를 주었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였다. 진표는 수련을 멈추지 않고 영산사로 가서 용감하게 수행하기를 처음과 같이했다. 이렇게 하자 이제 미륵보살이 감응해 현신으로 나타나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깨달음의 최종 결과로 간자 189개를 주었다. 미륵보살은 이것을 진표에게 주면서 "너는 이것으로 세상에 불법을 전해 사람들을 구하는 뗏목으로 삼아라"고 했다.

시련을 통해 역량을 키운 진표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점찰교법을 전국에 폈다. 스스로를 통렬히 참회하면서 부처의 진리를 깨닫자는 것이었다. 이후 그의 제자 영심은 진표의 간자를 받아 속리산으로 가 머물면서 그의 법통을 충청도로 이어갔고, 팔공산의 심지는 영심으로부터 진표의 간자를 받아 또한 경상도에 전했다. 영심은 복숭아나무 위로 올라가 거꾸로 땅에 떨어지며 참회했고, 심지는 7일간 땅을 치면서 참회했는데, 그의 이마와 팔꿈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위에 든 몇 가지 불교설화는 과장되었다며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읽고 말면 중요한 의미를 놓친다. 시련 없이 자아의 역량을 키울 수가 없다는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주조개가 상처를 통해 아름다운 진주를 품듯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그 극복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위대해진다. 상처나 시련을 너무 두려워하는 오늘날, 혹독한 참회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진표의 구도 역정이 더욱 궁금해진다.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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