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수도권 권력, 괴물로 키울 건가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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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2   |  발행일 2020-07-02 제26면   |  수정 2020-07-02
우한 코로나 중앙집권 병폐
분권 살린 기업은 승승장구
수도권 인구 첫 50% 상회
원 포인트 지방분권 개헌
수도권 팽창 지연시킬 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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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공화정에선 권력의 주체가 국민이다. 헌법 1조 2항에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는 검찰과 재벌이 대한민국의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다 하고, 혹자는 '청와대 공화국'이란 은유에서 권부의 역학구도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센 권력의 본령은 바로 수도권이다. 권력의 요체인 정치·경제·문화·언론이 모두 수도권에 정치(定置)돼 있어서다. 거대한 수도권 권력 앞에 공화정은 '형해화'되고 말았다. 형식은 공화정이되 내용과 가치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허울뿐인 지방자치도 무소불위 수도권 권력을 키운 동인이다.

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19는 중앙집권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나서야 우한 시장이 고백했다. "우리는 베이징의 승인을 받은 후에야 정보를 공개할 수 있었다"고. 중국은 시진핑 체제 후 중앙집권과 '시 황제' 1인 권력집중이 더 강화됐다. 지방정부의 분권과 자율이 작동할 여지는 없었다. 느려 터진 초동대응으론 염병(染病)의 전파력을 차단할 수 없다는 걸 우한의 비극이 증명한다.

어디 국가뿐이랴. 기업도 다르지 않다. 일찌감치 분권과 수평적 네트워크의 효율성에 주목한 기업은 승승장구했다. 구글이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한 속뜻은 권한 이양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함이었다. 금융정보서비스로 시작해 미디어 기업으로 영토를 넓힌 블룸버그LP 창업자 블룸버그의 리더십은 분권과 투명성이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 또는 공공 거래장부로 불리는 블록체인의 키워드도 정보공유와 분권 아닌가.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 국가를 구현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그때만 해도 그리 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어찌 됐나. 유야무야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듯싶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방선거와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가 추진됐던 2018년 6월이 분수령이었다. 한데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았다. 동시 선거가 '정권 심판론'을 희석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결과는 한국당의 참패. 괜히 지방분권만 망쳐놨다는 핀잔이 넘쳐났다.

이제 현 정부도 지방분권엔 뒷전이다. 조그만 불씨조차 가물가물하다. 성과라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지방일괄이양법이 고작이다. 지방분권 개헌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금을 흘려버리면 다음 정권에서도 기약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은 책임이 있고, 미래통합당은 지방분권 개헌에 딴지를 건 전과가 있다. 21대 국회 전반기가 그 업보를 만회할 기회다. 여야 합의로 반전(反轉)의 빌미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지방분권 원 포인트 개헌이어야 한다. 권력구조를 거론하는 순간 '개헌 블랙홀'에 빠진다.

스위스는 국토균형발전 모범국가다. 10대 기업 중 8곳이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다. 대기업 80%가 수도권에 있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연방제란 강력한 지방분권이 균형발전을 견인한 결과다. 우린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서며 사상 처음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세계 유일이다. 수도권의 구심력이 갈수록 드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수도권 권력은 통제 불가능할 만큼 비대해졌다. 4·15 총선 때 대구경북 유권자의 경선 결과를 호떡 뒤집듯 엎어버린 통합당 최고위의 폭거도 따지고 보면 수도권 권력 아닌가. 수도권 팽창을 저지할 유일한 방책은 지방분권 개헌이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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