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이 시대, 우리의 '상식'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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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6   |  발행일 2020-07-06 제26면   |  수정 2020-07-06
1776년 페인의 팸플릿 '상식'
美 식민지인 독립의지 고취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교훈
자학·굴종·사대 관행과 결별
냉철한 통찰·담대한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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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 대구대 교수

엊그제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다. 1776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 대륙의 13개 주가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미국의 독립선언은 오래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 왕실의 압제와 수탈에 식민지 주민의 불만이 컸지만 독립론이 대세는 아니었다. 영국 왕실의 후퇴와 화해를 기대하는 여론이 더 컸다. 그러한 인식은 두 가지 통념에 기초해 있었다. 하나는 영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이었다. 당시 영국의 앞선 의회 제도에 대해서는 식민지인들도 자부심을 가졌다. 다른 하나는 자신들의 힘에 대한 주저였다. 막상 독립하면 경제가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걱정했다.

토머스 페인이라는 사상가가 있었다. 그는 짧은 정치 팸플릿 '상식'을 세상에 내놓았다. 1776년 1월 독립을 선언하기 6개월 전이었다. 두 가지 통념을 깨뜨리는데 집중했다. 먼저 영국의 세습군주제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제도인지 명쾌하게 설파했다. 아울러 식민지 13개 주가 연합하면 얼마든지 강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주권과 이익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이제 '상식'이라고 했다.

페인의 '상식'은 출간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식민지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독립의 당위성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회복했다. '상식'이 발간되고 꼭 6개월이 지나 13개 식민지 주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페인의 사상을 듬뿍 담았음은 물론이다. 7년 뒤 13개 주는 함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244년 전 먼 나라 얘기를 새삼 꺼낸 이유는 페인의 주장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예컨대 우리는 미국·일본 등 강대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외심에 묻혀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력과 기술력에 주눅들어 그들의 요구를 국익보다 앞세우지는 않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과 국력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폄훼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지내지는 않았는지도 반성해야 한다.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각국의 실력과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선진국들의 부끄러운 코로나 대응 역량과 뿌리 깊은 인종차별 관행이었다.

볼턴의 회고록을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 많다. 트럼프의 수준 이하 언행은 오래 봐왔지만, 볼턴으로 대표되는 미국 네오콘의 안하무인 세계관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시아 대표국이라고 으스대 온 일본 아베와 극우의 역사 왜곡과 꼼수 외교도 낯뜨거운 수준이다.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일본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토머스 페인이 그랬듯이,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가장 뼈아픈 것은 50년 전, 30년 전의 세계관을 그대로 갖고 미국과 일본을 상전 모시듯이 하는 굴종적 사대주의다. 미 네오콘의 전쟁불사 선동에 환호하며 우리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비난하는 지식인과 언론이 적지 않다. 심지어 공당까지 일본 아베와 극우의 관점에 기대 우리가 숙이고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것은 보수도 아니고 상식은 더더욱 아니다.

자학과 굴종, 사대의 낡은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 그 위에서 평화와 호혜의 세계질서를 세워 가는 일에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이 시대, 우리의 '상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 냉철한 통찰과 담대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홍덕률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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