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기후변화는 욕망의 산물이다

  • 박진관
  • |
  • 입력 2020-08-15   |  발행일 2020-08-15 제23면   |  수정 2020-08-15

2020081401000498600019021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어릴 적에 한옥에서 살았다. 장마철에 비가 내리면 아랫목에 누워 빗소리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처마와 지붕 그리고 마당에 내리는 각양각색의 소리를 마치 연주곡처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빗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비가 올 때면 그때를 기억하고 감상에 잠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사치를 부리기가 어려워졌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걱정을 해야 할 때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기와 바닷물의 대류가 바뀌고 녹아버린 빙하의 수증기는 낮은 기압골을 따라가면서 폭압적인 비를 쏟아붓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반면에 건조한 지역은 강수량이 더 적어져 사막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

이번 장마를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이르기를, 자연이 인류에게 반격을 가하는 것이며 자연을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절의 순환이 깨지는 것을 보면서 지구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걱정을 한다. 이 말에는 여전히 인류 중심주의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위기에 처한 건 인류이지 대자연은 아니다. 지난 세월 동안 유지되던 계절의 순환이 지구의 본모습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자연에는 정해진 규칙이란 것이 없다. 그냥 주어진 조건 내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낼 뿐이다. 인류의 생존은 대자연의 고려사항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계절의 순환은 고작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다. 1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빙하기 끝자락이었고 북아메리카 대륙 절반은 수㎞ 빙하로 덮여 있었다. 전혀 다른 계절의 법칙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거대한 빙하가 녹자 대지였던 대부분의 대륙붕은 물에 잠기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류는 그 처참한 광경을 홍수의 신화로 남겼다. 반대로 북미지역에서는 땅이 융기되는 지각변동이 생겼고, 바다에서 땅이 솟아났다는 신화가 생겼다. 주어진 조건이 그렇다면 어떠한 생명도 품어야 한다는 법칙도 없으며, 화성 같은 행성이 된다 한들 이 역시 대자연의 뜻일 뿐이다.

인류는 수억 년간 축적돼 있던 에너지를 10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상당 부분 태워 없애면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부산물을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우리를 이롭게 하려던 발명품들이 생명을 구하고 오래 살도록 돕자 더 많이 에너지가 필요하니, 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워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를 증가시켰다. 증가된 무질서에 따라 지구는 더 무작위적인 패턴을 새로운 규칙으로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탄소 발생을 줄이지 않으면 큰 기후위기가 올 것이란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상황이 아니므로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성장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란 망상을 가지고 마음껏 에너지를 낭비했지만 우리는 전혀 행복해지지 않았다.

인간은 탐욕에서 벗어나기 힘든 존재다. 더 많이 가지고 더 편해지려고 하니 이제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문제는 무작위적인 기상 이변의 희생자는 항상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며, 가난한 국가의 국민일수록 해를 피하기 어렵다. 부자일수록 그리고 부유한 국가일수록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데, 피해는 엉뚱한 사람이 보는 이 불균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탄소배출 감소야 당장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피해 보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 정신과 재정적 지원이 절실한데, 성장에 대한 욕망을 과연 얼마나 자제할 수 있을까. 지금 집값을 내리려는 정책 하나에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어마어마한 저항을 보이는데 말이다.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오피니언인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