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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출신 시인들이 연이어 신간 시집을 발간했다. 김정옥·서하·정대호·앙경한·최영조 시인의 시집을 소개한다. 시인들은 각자 시집에서 인생을 성찰하거나 그리움을 노래한다. 또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기도 한다. '5인5색' 다양한 색깔이 있는 시인들의 신간 시집을 읽으며 늦더위를 잊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벼랑에 꽃 피면(김정옥 시인·문예바다)
"그 향은 울음일까/ 잎잎마다/ 눈물의 소인이 찍힌/ 아니다/ 자세히 보면 그는/ 푸르고 짙은 불의 형상으로 타오르고 있다/ 줄기에 묻어 둔 무슨 화로가 있어/ 비바람 거셀수록 몸 사르는 향내는 나는 것일까"(시 '향나무 앞에서' 중)
김정옥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의성 출신인 김 시인은 지난 2014년 '동리목월'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총 4부로 나눠진 시집에는 표제작인 '벼랑에 꽃 피면'을 비롯해 '놓친 마중' '개망초' '뒤늦은 대답' '이방인' '사이에 대하여' '프라하의 봄밤' '초대' 등 70편에 가까운 시가 실려 있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세계에는 이렇게 의미가 되고 싶은 '꽃'들이 무수히 많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그러나 시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시적인 표현을 사용해 입체적으로 표출함으로써 세계는 의미 있는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며 "시인은 세계에 대해 그렇게 해야 할 빛을 진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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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묽은 미음 같은 형은 이제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물린 데도 없이/ 한쪽 다리를 절룩인다/ 없는 개가 또 짖는다/ 소리 없는 생애가 더 슬프다는 걸/ 꼭 아는 사람처럼"(시 '안개' 중)
영천에서 태어난 서하 시인은 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1회 이윤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시집은 서하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사문진 일몰' '애기단풍' '미안한 마음' '바닷물보다 눈물이 더 많다' '낮달' '눈물이 왜 별처럼 반짝이는지' 등 60편의 시가 실려 있다.
'수학공식 어려운 법조항 하나 몰라도/ 가난에도 결이 있단 걸 어찌 알았을가요'라는 그의 시 구절처럼, 세상과 슬픔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결은 무척이나 섬세하다.
진순애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서하의 시는 은유의 언어학으로써 사물의 존재성을 인간학적으로 특화시키고 있다"며 "그의 시는 결국에는 풍자적 은유로써 탈휴머니즘과 욕망주의를 비판하는 시의 동시대적 역할에 닿아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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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의 메아리'는 양경한 시인의 등단 40년의 기록이자 시인의 12번째 시집이다. '1부 세월의 길목에서' '2부 작은 것이 아름다울 때' '3부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4부 그리운 이름들'로 나눠진 시집에는 '주름꽃' '세월의 길목에서' '버려진 활주로' '강물에 삽을 씻다' '낯선 풍경화' 등 90여편의 시가 담겼다.
양 시인은 아동문학가, 수필가, 시조시인, 수필가 등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이철균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대해 "이미지의 형상화와 섬세한 시향이 돋보인다"며 "진실된 체험에서 빚어올린 서정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이지미를 형상화하고, 그리움과 순수성을 자아가 외적 세계를 부드럽게 수용하는 성향이 새로운 시적 감흥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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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호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유신 말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비롯, 한 시대의 이야기를 시로 기록하고 있다. '고문' '고문을 이기는 법' '곡주사' '짐승의 시간' 등의 시들은 어둡고 아팠던 한 시절을 증언한다.
'내 인생은 블랙리스트였다'라는 시에서 그는 "1980년대라는 한 시대의 감옥 속에서 내 일생은 갇히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회고한다.
청송에서 태어난 정 시인은 경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부 시절 복현문우회에 나간 것이 계기가 돼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1984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시를 발표했다.
신재기 경일대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정 시인의 시적 시선은 그가 여섯번째 시집을 펴내는 동안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그가 사회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약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문명과 권력의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담아내는 시인이란 점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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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셈하지 못하면/ 기다림도 셈하지 못할까/ 밤낮으로/ 등 위로 몰래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별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할까"(시 '시간의 바다' 중)
'1부 그리움의 자리' '2부 돌아가는 길' '3부 그대가 있었네' '4부 화실의 세계' '5부 아내의 잠' '6부 하늘 그물' 등 6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늘 그대가 있었네' '들국화' '가을비' '코스모스' '어디 있니' '모닥불' '사람 사는 세상' 등 시인의 그리움과 깨달음을 담은 시들이 가득 실려 있다.
이번 그의 시들은 마치 시조처럼 간결한 언어에 담긴 따뜻하고도 정갈한 정서가 인상적이다.
의성 출신인 최 시인은 '아름다운 이별' '아름다운 만남' 등의 시집을 펴냈으며, 동국대 인문과학대학장을 지냈다.
최 시인은 서문에서 "나는 평생 붓을 들고 살아왔다. 그런데 붓질을 끝내고 돌아서면 나는 늘 먼먼 우주 공간에 나 홀로 남겨졌다"며 "문득 어둠처럼 몰려오던 시퍼런 외로움들,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고 내 사랑의 행방을 물었다. 그 바람의 말들을 여기에 적어 둔다"고 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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