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핵화-종전 선언'의 先後관계가 모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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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4   |  발행일 2020-09-24 제27면   |  수정 2020-09-24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질서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밝혔다. 또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 한반도 상황이 경색되면서 사라졌던 '종전선언' 구상이 20개월 만에 재등장한 것이다. 집권 후반기에도 남북관계 회복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승부수인 셈이다.

국제사회를 향한 유엔총회 기조연설이란 점을 참작하더라도 '종전 선언' 주장은 다소 의외다. 보수 진영에서는 '느닷없다'는 반응이고, 진보 쪽에서는 '최악의 남-북-미 상황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는 듯하다. 종전선언과는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돼온 '북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렸다. 비핵화의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국의 의견조정이 필요한 종전선언이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종전선언 카드는 지난 7월 취임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첫 합작품'인 셈이다. 교착 상태인 남·북,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을 고리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다시 끌어내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계를 다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다. 문 대통령이 2018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도 그런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유엔 연설에서는 비핵화와 종전선언의 선후관계가 애매모호하다. '비핵화 빠진 종전선언' 또는 '선(先)종전선언, 후(後)비핵화'처럼 읽힌다. 미국은 여전히 종전선언에 냉담하다.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역진하고 있다. 종전선언 구상은 희망의 메시지이긴 하지만 여전히 중간 과정을 많이 생략한 불완전한 구상이다. 불완전한 구상의 완성도를 높이는 유일한 길은 북한의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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