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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3·30대구독립만세운동과 불교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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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1   |  발행일 2021-03-11 제23면   |  수정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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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문화부장

"항자 소요 이래로 헌병 분대 및 경찰서에서난 엄중이 경계중이던 바 삼십일 덕산정시장에서 달성군 후산면 동화사의 출장소되난 대구 덕산정포교소의 승려 열명은 오후 한 시경에 작은 구한국 국기를 들으며 만세를 불렀음으로 검속하얏다더라."(1919년 4월3일자 매일신보)

위 기사는 102년 전 3월30일 대구 덕산정시장(현 염매시장) 일대에서 펼쳐졌던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대구에선 기독교계와 학생 중심의 3월8·10일 만세운동에 이어 불교계의 주도로 시민 봉기가 이어졌다. 민족대표 33인이었던 만해, 용성 스님과 연결돼 3월30일 동화사 지방학림 학승 주도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용성 스님은 1913년 대구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앞산 안일암에서 결성했던 조선국권회복단과도 인연이 깊은 상태였다.

102년이 지난 그끄저께 8일 광복회·구구단(究丘團) 등이 주관해 옛 큰장(서문시장)에서 3·8독립만세운동 재연행사가 열렸다. 10여 년 전부터 중구청과 제일·남산교회 등을 중심으로 8일이 아닌, 삼일절인 3월1일 동산언덕에서 만세운동 퍼포먼스를 했으나 정작 102년 전 큰장에서 대구부민 1천명이 참여했던 그날 그곳에서의 만세운동 재연은 없었다. 이는 자치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었다. 더욱이 1919년 3월30일 대구부민 2천여명이 참여한 대구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은 학계의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역 불교계의 관심도 시큰둥했다.

영남일보가 8년 전 이 같은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한 민간단체가 옛 큰장 입구에 3·8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세워 이날을 기억했으며, 8일에도 삼일운동 행사를 진행했다. 재작년 8월엔 대구 중구청이 3·30만세운동 현장인 대구 보현사 외벽에 대형 전자스토리보드를 설치해 만세운동에 참여한 학승과 불자들의 뜻을 기렸다. 또 작년엔 사학자인 경일대 김일수 교수의 노력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했지만 그동안 서훈을 받지 못한 당시 동화사 학승 이성근(19), 김종만(21), 김윤섭(20), 박창호(19), 허선일(23), 이보식(20) 등이 서훈을 받게 됐다. 당시 덕산정시장 만세운동을 주도한 위의 스님들은 일제로부터 1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지만 가족과 후손이 없던 관계로 서훈 신청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들의 만세운동 소식은 전국 사찰 곳곳의 만세 시위로 번지는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동화사는 독립운동을 현창하는 데 인색했다. 동화사 학승들이 용맹정진한 선원인 동화사 심검당(尋劍堂·당시 지금의 법화당 자리에 있었으나 현재 대웅전 오른쪽에 위치) 입구에는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간판만 있을 뿐 만세운동 관련 사실은 적혀있지 않다. 또한 동화사 통일대불 옆에 위치한 성보박물관에도 3·30만세운동 관련 기록과 유품을 찾아볼 수 없다.

다행히 얼마 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이 국고지원을 받아 전국 사찰 8곳의 성보박물관에 전문학예사 배치 및 수장고 확장사업을 실시하면서 동화사도 선정됐다. 이에 따라 동화사도 경내에 박물관을 설립하고 학예사와 보조 인력을 채용한다고 알려진다. 그렇게 된다면 영천 용화사 대적광전에서 발견된 3·30만세운동 관련 독립운동 사료와 유품을 새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 동화사 포교당(조선선종경북포교당)이 있던 현 보현사도 계성학교 아담스관처럼 지하에 전시관을 마련해 3·30만세운동을 현창할 수 있다.

대구 불교계도 3·30독립만세운동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하길 바란다.


박진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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