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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 음악인문학자·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
예술사에서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의 급진적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는 "더 이상 사물을 그릴 필요가 없다"고 외치며, 그림에서 모든 형상을 지우고 오직 '검은 사각형'만을 남겼다.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그 도형엔 모든 감정과 직관이 응축되어 있다. 말레비치는 이를 '무(無)'라 불렀고, 그 무로부터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 스컬리의 검정은 말레비치의 차가운 침묵과 달리, 묘한 인간적 온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오래 머물렀다. 검정은 상실과 아픔의 색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색을 품은 빛이며 치유의 마음이다.
동양에서는 이 우주를 '천지현황(天地玄黃)'의 '현(玄)'이라 부른다. 깊고 검푸른 하늘빛. '티마이오스'가 말한 신비로운 일자(一者), 보편성의 세계는 '현동(玄洞)'으로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생명의 기원이자, 모든 생성 이전의 가능성이 잠든 공간이다. 스컬리의 검은 사각형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고요한 리듬, 닫힌 듯 열려 있는 마음의 창. 그림 앞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검정은 내게 낯선 색이 아니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검은 옷을 입는 이유는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보이지 않는 그 자체의 영혼에 있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소리를 중심에 놓는 태도. 스컬리의 검정도 그랬다. 닫힌 벽이 아니라,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창. 그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세계, 빛과 소리와 리듬이 깃든 공간이었다.
나는 전시장에서의 '걷기'를 좋아한다. 여기선 발걸음과 호흡이 느려지고, 그림 하나하나를 응시하다 마침내 조우(遭遇)가 찾아온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의 즐거움'이다. 시간과 자아를 잊고 대상에 몰입하는 이 오롯한 즐거움! 실제로 미술 감상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뇌의 쾌락 중추를 자극한다는 과학적 근거와 연구들도 있다.
예술의 가치와 향유는 단순한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어루만지고, 감정의 선과 무늬를 색칠하는 '비언어의 언어'. 그래서 전시장을 나설 때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맑아진다. 나 자신을 좀 더 다정다감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지 기분이 아니라, 뇌와 마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섬세한 변화이다. 대구미술관에서 마주한 '검은 사각형'처럼, 예술은 우리 내면에 고요하고 깊은 창 하나를 내어준다. '공간의 연인'으로서 창은 비어 있지만 수많은 이야기와 은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야 성벽에 비친 빛'처럼, 그것은 내게 예술혼의 또 다른 이름이자, 현(絃)의 아름다운 비밀이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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