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경북 경산의 '발해마을'을 아시나요

  • 천윤자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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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0   |  발행일 2021-04-28 제12면   |  수정 2021-05-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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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 남천면 발해마을에 조성된 대조영 추모제 정원. 고 왕전과 대조영의 흉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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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마을 입구 양쪽으로 태극기와 발해국 깃발이 줄지어 서 있다. 대조영 후손들은 이곳에 성을 축조하고 발해역사전시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벽화
발해마을에 가면 말 탄 장수들이 만주벌을 달리는 모습을 그려 놓은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대조영 후손 집성촌입니다. 30여 가구 대부분 태(太)씨 일족입니다."

경북 경산 남천을 따라 남천면 송백2리에 이르면 마을 입구에 '발해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양쪽에 태극기와 발해국 깃발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대조영의 흉상과 사당이 있고, 말 탄 장수들이 만주벌을 달리는 발해의 옛 모습을 그려 놓은 벽화를 만난다. 집집마다 봉황이 그려진 같은 모양의 문패에 발해 43세손 태OO으로 표기돼 있어 태씨 집성촌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발해는 대조영이 만주에 건국한 고대국가로, 696년에서 927년까지 231년간 번창했다. 바다 동쪽 번창한 나라라는 뜻으로 '해동성국'이라 불렀다.

대조영 장군의 깃발 속 '큰 대(大)'와 '더 큰 태(太)'는 음양의 기운을 받은 우주 만물을 상징한다. 고려 태조(왕건)가 발해 고왕 대조영에 관한 기록을 정리할 때 대씨에서 태씨로 사성(賜性)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문헌에는 고려 이전부터 대와 태가 통용돼 기록돼 있고, 중국의 역사서 동사통감에는 대조영이 태조영으로 기록된 부분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대씨로 쓰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발해마을 주민은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을 규합해 민족의 맥을 잇고 만주를 호령하던 발해의 역사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2005년에는 경남 진해에서 열린 대조영함 진수식에 초청되기도 했다.

수년 전 중국이 역사학자를 동원해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둔갑시키는 동북공정을 일사천리로 해치우자 조용하던 발해 마을이 술렁거렸다. 십시일반 돈을 거두고 의기투합했다. 먼저 1억원을 들여 태씨 남자 142명의 얼굴 사진을 분석해 대조영 표준 영정을 만들었다. 5년 동안 아홉 차례 국가심의 과정을 거쳐 2012년에 국가표준영정 제86호로 지정받았다.

2013년부터는 매년 춘분날에 영정을 모시고 발해마을 고 왕전에서 춘분대제를 올리고 있다. 2017년엔 대조영 흉상을 제작해 추모제 정원에 모셔놓았다.

후손들은 "앞으로 마을 입구에 성을 축조하고 발해의 역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전시관과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라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박하는 자료를 역사전시관에 채워 대한민국 발해 교육장으로 가꿀 예정"이라고 했다.
글·사진=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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