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대구가 최적지 (1)] 대구 인교동은 '삼성' 출발지이자 이건희의 고향

  •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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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6 19:56  |  수정 2021-05-18 12:00  |  발행일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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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침산동 삼성창조경제단지 내 삼성상회 건물. 대구시 제공

대구는 삼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간직한 지역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이 자본금 3만원으로 처음 장사를 시작한 곳이 대구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대구에서 태어났고, 삼성의 근간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모직 공장인 제일모직도 대구에서 설립됐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전 세계로 뻗어 있는 삼성의 출발점이 대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삼성상회, 대구에서 세우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 3월 1일 대구 중구 인교동(당시 수동)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세웠다. 자본금 3만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에 전화기 1대를 설치하고 직원 40여명과 함께 출발했다.


삼성상회는 대구 일대에서 출하되는 청과물과 건어물 등을 만주로 수출하는 교역이 주업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3대 전통시장 중 하나로 전국의 장사꾼들이 모여드는 서문시장 인근에 자리한 것이다.


삼성상회는 국수 제조업도 병행했다. 바로 '별표국수'다. '크고 강력하고 영원함'을 뜻하는 3개의 별인 삼성의 로고가 여기서 비롯됐다.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삼성상회 문을 연 것은 부인 박두을 여사가 달성군 하빈 출신이어서다.


대구에선 '오토바이 골목'으로 잘 알려진 달성로 모터사이클 집적지 끝자락에 위치한 삼성상회는 1947년 이후 건물만 보존돼 오다 1997년 붕괴 우려로 철거됐다.


지금은 삼성그룹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구조물만 존재하고 있으며,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복원 재현한 삼성상회 건물은 청년 창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옛 제일모직 터를 새롭게 개발한 삼성창조캠퍼스 삼성존에 들어서 있다.


창업주 이병철 삼성상회 세워 삼성창조캠퍼스 내 복원 재현

막내아들 이건희 나고 자란곳 컬렉션 유치로 고인뜻 기려야


◆삼성의 근간, '제일모직'
이건희 회장은 과거 "제일모직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변치 않는 도전과 변신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병철 회장은 1954년 9월 국내 최초 모직공장인 제일모직을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설립했다. 이 일대 24만7천여㎡ 부지에 자본금 1억원을 투입해 민간 기업으론 처음으로 독일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제일모직은 구미공장(1978년), 안양공장(1981년), 여천공장(1989년)을 잇따라 세우면서 대한민국 섬유업계를 주름 잡았다. 1995년엔 대구공장이 구미공장과 통합하면서 빈 땅으로 남게 됐다.


이병철 회장은 1954년 9월부터 1971년 1월까지 제일모직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건희 회장도 1980년대 후반부터 2005년까지 등기이사로 재직하는 등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근간이었다.


제일모직 터는 2017년 삼성창조캠퍼스란 이름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젊은이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삼성그룹은 제일모직 부지 일부를 떼어내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대구시에 기부 채납했다. 현재 오페라하우스 앞 도로는 '호암로'로 명명돼 있다. 이병철 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대구는 이건희 회장의 고향
대구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1942년 1월 9일 대구시 중구 인교동(서성로 15길 61)에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1947년 아버지 이병철 회장을 따라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막내 아들이어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이 태어나고 자란 인교동 집은 '호암 이병철 고택'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호암이 대구를 떠난 뒤 한때 집 주인이 바뀌기도 했으나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삼성문화재단이 1996년 다시 매입했다.


해외에선 개인이 고가의 미술품을 대량 기증할 경우 분산시키지 않고 별도의 미술관을 마련해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것이 관례다. 기증자를 기리는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대표 미술관으로 육성하는 차원이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 동안 수집한 값진 미술품(2만3천여점)을 고인의 뜻에 따라 국가에 기증하기로 한 만큼, '이건희 미술관'은 고향인 대구에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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