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소설가 김원우 2...세상 알지도 못하는 유튜버가 판쓸이하는 세상, 소설에 환멸을 느낀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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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1   |  발행일 2021-05-21 제34면   |  수정 2021-05-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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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때문에 북한으로 가서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그로 인해 광기에 휩싸여 4남매를 홀몸으로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1950년대 초 어머니의 신산스러운 삶이 너무나 딱해서 그만 눈을 감았다.
분단의 거대담론 녹여낸 형과 달리
세상에 대한 불편 고집스럽게 지적
소설의 탄생과 유통구조 까발리고
배은망덕하게도 故최인훈에 '반기'

세상만사 밀집된 사전은 '블랙홀'
작가라면 방구석에서도 우주 포착
일상 속 비밀 찾은 염상섭이 '진짜'

풍경 좋은 곳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는 되레 소설에겐 '무덤'일 수 있다. 그냥 평범한 도시의 거미줄 웅성거리는 구석방이면 족하다. 진짜 작가라면 거기서 우주 끝을 포착할 수 있다. 허블망원경보다 더 먼 시야. 이게 어불성설이겠지만 작가는 그걸 맹신한다.

좀처럼 외국 나들이를 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상하게 일본은 구미에 당겼다. 1990년부터 '샅샅이 훑어내기식' 일본 기행이 시작됐다. 한·중·일 원형 찾기의 일환이랄까. 내게는 하나의 '수행'이었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필적하는 일본문화 탐문서를 집필했다.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님에도 우린 일본을 개똥만도 못한 존재로 깔아뭉갠다. 그러면서도 일본 지식의 철저함, 일본 음식의 장인정신에는 예찬 일색이다. 한국인의 이중성, 일본인의 콤플렉스를 '일본탐독'이란 책으로 분석했다. 있는 그대로의, 평면화된 일본을 찾고 싶었다.

온갖 세상체험도 중요하겠지만 문장 단련에는 반드시 인문학이 뒤따라줘야 된다. 소설이 본존불이라면 신문과 사전은 '협시불'이다. 특히 사전은 날 지켜주는 수호천사다. 내 책상 위엔 20여 권의 각종 사전이 꽂혀 있다. 세상만사의 종횡이 이렇게 작은 공간 속에 밀집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울 따름이다. 사전, 그거 역시 '블랙홀' 아닌가. 사전 속 생경한 단어 위로 형광펜 자국이 얹힌다. 심해를 부유하는 해파리의 촉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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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기행을 위해 독일 드레스덴에서 체코 프라하로 가는 기차 안. 거기 젊은 시절의 김원우가 있다.
◆최인훈과 나 사이

'소설'이란 꿈속에서 '작품'이란 '장난'을 치고 있는가. 내 연대기의 막장에는 너무나 가련하고 섬뜩할 정도의 이승을 제거하는 자객이 숨어 살고 있다. 그게 '술'이라 여긴다. 때론 내가 김원우가 아니라 '술원우'인 것 같다.

나름 문단에서 확실한 입지를 확보한 형이 오히려 내 등단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본명으로 투고하면 필시 형의 도움을 받았다는 소문이 날 것 같았다. 마침 한 친구가 당시 갓 개설된 주택은행 안양지점 직원으로 부임했는데 그 친구 주소로 '한국문학'에 투고했다. 제목은 '임지'. 필명은 이제마. '동의수세보원'이란 책으로 사상의학에 개조가 된 분인데, 내 소설이 한국문단의 신기원이 될 거란 야심 때문에 일부러 그런 필명을 사용했다.

작가 같은 작가. 난 그중 한 명이 횡보 염상섭이라 생각한다. 그는 철저하게 사소한 일상을 직시했다. 구름 위에 비밀이 있는 게 아니라 자잘한 일상 속에 비밀이 있다는 걸 안 분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린 그를 대충 평가하고 넘어간다. 작품 수로만 봐도 이광수·김동인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단한 작가다.

2018년 7월23일 향년 84세로 최인훈이 죽었다. 그는 한때 한국 소설의 상징으로도 추앙받았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 선배와 함께 문상했다. 빈소에 놓인 최인훈의 전집에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 한국문단 풍토로 보면 배은망덕한 짓이었다. 최인훈이 가장 아낀 작가 중 한 명이 나였다. 등단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분이고 내겐 너무나 간절했던 동인문학상(1991년) 수상 때도 날 지지했다. 하지만 나는 고인의 위업에 대해서만은 대들고 싶었다.

그의 모든 작품을 정독했다. 난 크게 실망했다. 명성의 발원처는 당시 평단의 지존으로 불리던 김현과 김윤식 문학평론가. 둘은 공저 '한국 문학사'에서 그를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했다. 좀 성급하게 말하면 그는 이 척박한 문학 풍토에서 책상다리로 앉아서 급변하는 세상사를 인간사보다 더 주목하는, 그래서 '모더니즘의 적자'임을 지레 자임하고 나선다. 더 심하게 말해 그에게 이야기는 어떤 형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빌려다 쓰는 소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명실상부한 소설가라기에는 한참 밑도는 자격미달자였다. 그런 비판 또한 그에 대한 나만의 '예의'라 여겼다. 이후 '최인훈 소설의 허실론' 등이 담긴 '편견예찬'을 지난해 출간했지만 평단과 언론의 반응은 깜깜했고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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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설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이 세상에 대해 어떤 불편함을 갖고 있는가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대장정의 결과를 '편견예찬'이란 산문집에 담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대로 된 작가론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를 위하여'를 통해선 한 명의 작가가 어떻게 태어나고 크게 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노정을 걸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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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도 나그네도 못 된

난 삶에 여러 절망이 많았지만 출가하지도 나그네가 되지도 못했다. 다행히 날 은폐시키면서 세상을 맘대로 재단할 수 있는 멋진 비빌 언덕 한 채를 얻어낸다. 바로 '소설'이다. 난 소설 위에서 작두 타는 '특수무당' 아닌가. 소설은 삶과 인생을 그리는 '언어 제도'다. 소설은 결코 어려운 언어예술이 아니다. 공연히 심각한 포즈를 짓는 독자적인 관념과 일방적 환상이 자욱해서 뻑뻑하게 읽히는 소설은 가짜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속물의 정점에 있는 자 또한 소설가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2015년 나는 '작가를 위하여'(글항아리 출간)란 나만의 작가론을 냈다. 소설의 탄생, 소설가의 탄생과 몰락, 소설의 유통구조에 대한 진실을 다 까발렸다.

대구는 '제2의 고향'이다. 대구국민학교, 경상중을 건너 사대부고, 연이어 경북대에 다녔다. 대구에서 23년간 머물렀고 1974년 서울로 갔다. 그리고 1999년 3월부터 입에 풀칠하기 위해 13년6개월간 계명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임했다. 2012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지금은 지하철 5호선 하남·검단산 4번 출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대구 시절 대장암 때문에 수술도 했고 그 탓인지 체력이 날로 급감 중이다.

이젠 유튜버가 판쓸이하는 세상. 곧잘 소설에 환멸이 든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과학자를 호령하는 듯한 현학적 허세를 보이고 노자와 장자 이상의 동양철학 전문가란 듯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장광설을 펼쳐댄다. 작가는 다방면에 유식한 체하며 살아 가야 하는 가면 쓴 생활인, 공연히 정치판 같은 '남의 일'에도 전문가인 양 덤비는 허풍 심한 건성꾼, 그는 비 인격자이면서 부도덕한 위선자, 돈과 명예를 죽기 살기로 탐하는 전형적 속물이다. 그런저런 이중적 성격과 다중적 인격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그만의 고유한 인품과 소위 카리스마라는 '계급장'이 따라붙는다.

아무튼 일흔을 넘고 나니 지난날 내 작품에서도 많은 결함이 보인다. 예전 발표된 작품을 끄집어내 새로 개작하는 게 내겐 큰일이다.

소설이란 부나비가 수시로 잠을 가로막는다. 수십 년째 불면증을 앓고 있다. 충혈돼 퀭한 동공, 신경질적이고 옹이처럼 불뚝하고 독설·자학적인 말투와 행신. 이게 사람인가 싶은 그런 몰골이다. 그 어떤 소설가와도 교류하지 않은 탓일까. 모르겠다. 잠시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 가끔 마주치는 소시민들, 그들이나 나나 별반 차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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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우 소설가
△1947년 경남 진영 출생.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낸다.
△1966년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입학.
△1977년 소설 '임지'로 한국문학을 통해 등단.

그동안 소설을 28권 남짓 출간했다. 장편소설은 무기질 청년, 인생공부, 짐승의 시간, 가슴 없는 세상, 모노가미의 새 얼굴, 일인극 가족,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부부의 초상, 이 세상 만세 등 10권이고 나머지는 중·단편들이다. 역사소설로는 '우국의 바다'와 '운미 회상록'이 있다. 2015년 그의 소설철학을 정리한 '작가를 위하여'(글항아리)를 출간, 지난해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정리한 '편견예찬'(시선사)을 펴낸다. 동인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동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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