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종교와 음악

  • 김봉규
  • |
  • 입력 2021-05-26   |  발행일 2021-05-26 제26면   |  수정 2021-05-26 07:13
음악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
기독교 영향 클래식 음악은
선곡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불교계 반발 산 합창단 연주회
전화위복 계기 되도록 해야

2021052501000729900029011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무슨 일이든 의욕이 넘치다 보면 각별히 조심해야 할 점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최근 열린 대구시립합창단 공연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지난달 29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대구시립합창단 제152회 정기연주회 '오페라 합창의 향연'이 열렸다. 합창단 창단 40주년 기념연주회를 겸한 이날 연주회는 지난해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박지운 지휘자가 의욕적으로 준비한 무대였다. 베르디의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 나무는 향기를 내고',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허밍코러스'와 '투란도트' 중 '아무도 잠들지 말라' 등 유명 오페라 합창곡들이 울려 퍼졌다.

이날 공연은 평소 대구시립합창단의 무대와는 달리 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 솔리스트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해 솔로 부분을 소화하는 대규모 무대였다. 그 덕분에 관객들로부터 보기 드물게 큰 호응을 얻었다. 앙코르 공연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불교계가 공연 내용에 대한 종교 편향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 관계자들이 지난 14일 대구시를 방문해 공연 프로그램 중 일부 곡의 가사가 기독교 찬양 성격을 띠고 있고, 앙코르 공연이 부처님오신날 하루 전날에 열기로 한 점 등을 지적하며, 앙코르 공연 취소와 대구시장의 책임 있는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등을 요구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와 대구시는 앙코르 공연을 취소하고, 불교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약속했다.

대구시립합창단은 대구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예술단체다. 그러니 그 본분을 언제나 잊으면 안 된다.

종교와 음악은 역사적으로도 깊은 관계가 있고, 특정 종교와 관련된 종교음악은 그 종교를 벗어난 일반 음악이나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독교 문화를 토대로 한 서양 클래식 음악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 국악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곡들도 종교를 위한 오페라 작품이 아니지만, 그 합창곡의 가사에 '주님'을 찬양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어 문제가 됐다. 공적 예술단체의 경우, 전체적인 내용이 특정 종교를 찬양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고의가 없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2014년에는 잇단 종교 편향 공연으로 물의를 일으킨 대구시립합창단의 당시 지휘자가 사퇴한 일도 있었다. 당시 종교 편향 예방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방지책이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독교인이 많은 시립합창단이라면 공연내용의 종교 편향적 요소 유무 여부에 더욱더 조심, 방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종교가 없는 일반 관객, 다른 종교인 시민을 배려할 줄 모른다면 시립합창단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번 일로 더 멋진 무대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대구시립합창단과 지휘자의 의욕이 꺾이는, 불행한 일도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불교계도 이런 문제로 공연이 취소되는 등의 일이 생겨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구 예술계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