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시대정신]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불공정

  •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 |
  • 입력 2024-05-07 06:58  |  수정 2024-05-07 06:58  |  발행일 2024-05-07 제22면
"자본주의 사회 경쟁 일상화
나만 재능있고 열심히 한다
주장할 수 있는 분야는 없어
다양하게 합리적 조화이룰때
비로소 공정사회 말할 수 있어"

2024050601000185400007561
포스텍 명예교수

사회적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때 종종 사회의 치부와 모순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가족이든 집단이든 국가이든 갈등이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곳에서는 문제점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의 심장이 늘 뛰고 있음에도 건강할 때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병적 증후일 수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로 해결될 기미 없이 계속되는 의료사태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증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의사들의 집단 휴직과 사직으로 의료 현장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태로워지고 있음에도 이해관계의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의료사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다. 근본적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봉합의 수준으로 해결될 수도 있고, 곪아 터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하고 긴박한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도덕의 총체적 붕괴에 직면해 있다. 이제까지 사회를 떠받쳤던 전통적 규범이 해체된 자리에는 적나라한 '이기주의' '생존주의'와 '능력주의'의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 규범인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생존과 자기 이익의 증대를 위해 싸우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이기주의를 종종 공정과 공평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다. 지난 몇 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공정 담론에도 공정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높아지지 않은 이유이다.

내가 의료사태를 바라보면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도덕 자체를 경시하고 소홀히 하는 태도이다. 도덕이 밥 먹여 주나. 자신의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이런 물질주의적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것처럼 보이는 '능력주의'는 이러한 정서를 교묘하게 부추긴다. 좋은 수저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할 대상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분열되고 더 폐쇄적으로 변한다. '따로, 그렇지만 함께'라는 구호가 공허하게 들릴수록 상호 간 책임을 실천하고 공통의 희생을 감수하며 나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은 사라진다.

이러한 병리적 증상은 뉴진스 창시자 민희진 어도어 대표를 겨냥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막말과 비속어를 사용하는 "저런 사람들이 노력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괜찮은가?"라는 질문에는 능력주의의 핵심이 들어 있다. "뭐, 그건 괜찮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니까"라는 말이 다양성의 인정과 존중으로 들리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속내는 다음의 말에 그대로 들어 있다. "남보다 많은 노력을 했을 때, 사람들의 존경 또는 존중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좋은 대우를 받는 소위 '좋은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그런 직업인이 되기 위해 사람들이 노력하는 세상이 유지된다." 의사는 좋은 직업이기 때문에 인생의 황금기를 공부하느라 바치고 평생을 공부하며 가족과 놀아줄 시간까지 바쳐가며 희생하였다는 것이다.

의사가 좋은 직업이기는 하다는 이 말에는 다른 직업에 대한 상대적 평가가 들어 있으며, "의사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라는" 말은 능력에 따라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천박한 능력주의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의사와 법률 전문가가 현대사회에 남아 있는 유일한 귀족 신분이라는 분석처럼, 의사는 물질적 보상과 사회적 존중 그리고 명예를 마땅히 받아야 하는 좋은 직업인가 보다. 능력이 있고 노력만 하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직업은 물질적 부를 보장한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천박한 능력주의는 공정과 공평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훼손한다.

어처구니없는, 그렇지만 속내를 드러낸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말은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 우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모으는 개미와 따뜻한 계절 동안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 베짱이에 관한 이야기는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열심히 일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겨울이 오자 베짱이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개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개미는 베짱이의 게으름을 비난하며 도움을 거절한다. "더운 여름 동안에는 뭘 했니?"라는 물음에 "밤낮으로 노래만 불렀지"라고 베짱이가 대답하자, 개미는 베짱이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여름에 노래를 불렀으니 겨울에는 춤을 추면 되겠구나!" 이 말에는 약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들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능력주의의 오만함이 짙게 묻어난다.

사회는 능력과 재능이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개미로만 구성된 사회를 상상해 보라. 일과 노동이 본성처럼 굳어져 죽어라 일하는 개미들은 노예의 삶이다. 그곳에는 오직 무자비한 생존의 법칙이 지배한다. 태어나자마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과 가족의 생존 때문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이들을 자기 착취로까지 내몬다.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착취가 아니라 오히려 자유라는 착각 때문에 이들은 더 열심히 일한다. 착취를 하는 사람도 자신이고 착취를 당하는 사람도 자신이면, 착취는 자유로 둔갑한다. 내가 열심히 일했으니 내가 누리는 부와 지위, 자유는 마땅히 받아야 할 사회적 보상이기 때문이다.

베짱이에 대한 개미의 주장은 정말 공정한가? 베짱이가 담당하는 음악과 예술은 정말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무용하고 무의미한 활동인가? 베짱이의 아름다운 음악이 없었다면 이들의 노동은 더 견딜 수 없지 않았을까? 우리는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딴따라로 낮잡아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노래와 춤이 개미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베짱이가 되려면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고, 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고, 행운도 도와줘야 한다. 베짱이가 연예계에 진출하여 자신이 작곡하고 노래한 음반이 초대박을 맞아 엄청난 부를 얻을 수도 있지만, 재능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경쟁이 일상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만 재능이 있고 열심히 일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분야는 한 곳도 없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이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공정 사회'를 말할 수 있다.포스텍 명예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