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스토리] 수창청춘맨숀(1)…Since 1976, 대구에서 가장 낙후된 공간…청춘예술의 옷 입고 힙하게 날아올랐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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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4   |  발행일 2021-06-04 제33면   |  수정 2021-06-04 08:46
낡고 방치된 건물을 청춘예술이 도약하는 공간으로
현대미술協, 반대 주민에 낡은 게 멋지다는 것 설득
테라스에 그림 걸고 복도·배전반에 예술감성 코팅
'ㅅㅊㅊㅊㅁㅅ' 초성 녹여낸 CI, 창조적이고 미래적

외관베란다_과거
예전의 수창맨숀 모습. 1999년부터 방치된 수창맨숀은 오랫동안 주민의 민원 대상이었다. 〈수창청춘맨숀 제공〉

지금 나는 대구시 중구 수창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수창청춘맨숀(Since 2018·이하 수창맨숀)' 앞에 서 있다. 광장 입구에 'LOVE'란 조명설치물이 놓여 있다. 칙칙해 보이는 우측 아파트 벽 상단에 'ㅅㅊㅊㅊㅁㅅ'이란 자음 문자가 강변 조약들처럼 모여 있다. 수창청춘맨숀을 의미하는 디자인 글꼴이다. 어수룩한 저 건물은 과거에 살고 있지만 그 글씨체만은 이 공간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얼마나 먼 대구예술의 미래를 향하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서로 연결하고 합심하고 융·복합하겠다'는 의미로 글자 사이에 더하고 곱하고 연결하는 가감승제 기호도 삽입했다. 이 글꼴은 요즘 산업디자이너들 사이엔 꽤 감각있는 CI로 평가받는 모양이다. 바로 옆에 대구예술발전소(Since 2013)가 있지만 두 건물은 운영 주체가 서로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다. 수창맨숀은 대구현대미술협회, 대구예술발전소는 대구문화재단이 운영 주체.

수창맨숀은 예술보다 '청춘'에 방점을 찍어주려 한다. 이 '예술맨숀'의 화두는 뭘까? 청춘의 가슴에 스며든 예술을 시대, 그리고 일상과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청년예술을 위한 나침반 혹은 등대 같은 곳이다. 그래서 대구에서 가장 낙후된 건물이 필요했다. 가장 천대받는 공간에 빛을 주입시키려고 했다.

외관베란다_현재
수창청춘맨숀 전경. 청춘맨숀은 과거 전매청(현 KT&G) 대구 연초제조창 옆 사택 자리에서 '연꽃'처럼 태어난다. 다시 말해 '도심문화재생사업'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1976년부터 20년간 사택으로 이용되었지만 1999년 전매청은 폐쇄된다. 20년 가까이 유휴공간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활용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새로운 예술적 숨결로 채워진다.

2000년 5월12일 개관한 테이트 모던은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템즈강변의 뱅크사이드(Bankside) 발전소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곳에 들어섰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졌던 화력발전소로 영국의 빨간 공중전화 박스 디자인으로도 유명한 건축가 길버트 스코트에 의해 지어졌으며 공해문제로 이전한 이후 1981년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곳이 세계적 갤러리로 변신한다.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동북쪽으로 20㎞ 떨어진 자오양구 다산쯔(大山子)798. 천안문을 중심으로 구분한 5환선(還線)도로 중 4번째 원인 4환선에 자리하고 있는 옛 공장터다. 중국의 첫번째 원자폭탄과 첫 인공위성 부품이 생산됐던 곳으로 1954년 옛 동독이 만든 군수공장이었으나 도시의 확장과 경쟁력 약화로 문을 닫아 사실상 페허로 방치됐었다. 하지만 이곳도 중국 현대미술의 산실로 리모델링된다. 길이 1㎞, 남북 700m 넓이. 이 예술특구는 2002년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문을 열었다. 이 흐름은 즉각 국내 도심재개발에도 영향을 준다. 서울의 성수동 등 오래된 공장터, 전통시장, 농협 창고 등이 청년입주작가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 맨숀도 이 흐름과 맞물려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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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관심두지 않던 우범지역에 방치된 1970년대풍 낡고낡은 아파트 한 채. 한때 대한담배인삼공사 연초제초장 부속 관사로 이용되다가 결국 흉물로 방치된 이 맨숀을 청년예술로 심폐소생시키고 싶어한 사람이 있다.

대구현대미술협회장을 역임한 김향금 관장이다. 그녀가 갑자기 책을 한 권 내민다. '수창에는 귀신이 산다'는 스토리북이다. 연필을 들고 표지를 드로잉 기법으로 그렸다. 그는 이 아파트를 새롭게 고치기 전에 먼저 이 건물을 위해 고유제(告由祭)의 일환으로 책부터 만든다. 특히 어두컴컴한 복도와 방 곳곳을 점령한 '먼지'를 주시했다.

"누가 먼지에게 관심을 두겠어요.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먼지는 모든 위대한 구조물의 근본이 아니겠습니까. 무명이라 마냥 푸대접 받고 있는 청년예술가, 요즘 그들이 이 후진 아파트에 사는 먼지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이 빛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이 공간을 통해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무조건 새것만 고집하는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수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기했다. 그냥 페인트로 외벽을 싹 도배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는 '낡은 게 더 멋지다'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해외 도심재생사업 성공사례를 수집해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게 먹혀들었다. 당시 가장 낡았던 아파트 테라스 부분에는 탈부착할 수 있는 그림을 걸었다. 또한 복도와 찢어진 벽지, 배전반 하나도 그대로 살리려 했다. 그 결과가 바로 '복도 안단테'란 전시로 빛을 발한다. 작가 이안민지·장세록 등은 배전반, 빛바랜 테이프 자국 등 기존 낡은 오브제를 활용해 새로운 예술적 감성을 코팅했다. 그렇게 해서 이 공간은 '청년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 수창청춘맨숀(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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