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군위 화본리 화본역, 80여년 세월 추억이 차곡차곡…정겨운 간이역 고향 같구나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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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1   |  발행일 2021-06-11 제13면   |  수정 2021-06-27 14:01

[주말& 여행] 군위 화본리 화본역, 80여년 세월 추억이 차곡차곡…정겨운 간이역 고향 같구나
1936년 지어진 화본역은 철도 역사와 함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지만 지금도 군위에서 유일하게 기차가 선다. 옛 모습을 간직한 군위의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관광객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능수버들은 한사코 땅으로, 땅으로 향했다. 왜? 무언가 잃어버렸니? 살랑살랑,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기차역은 떠나고 또 돌아오는 장소. 버들은 제 가지 하나 꺾어 가라고 저리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이곳에서 흔들렸을까. 버들가지를 쥔 관세음보살처럼 우리 머리 위에 평온한 그늘을 씌워 주면서.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역을 바라본다. 화본역. 박공지붕 아래 소녀의 머리카락처럼 까만 글씨가 선명하다. "내 어릴 때는 여가 데이트 장소였다 아이가." 햇살 가득한 광장을 가로질러 오던 중년의 남자가 큰 소리로 말하며 능수버들 아래 앉았다.

군위서 기차 서는 유일한 역
1936년 첫 모습 그대로 간직
옛 철도관사·급수탑도 남아

영화 '리틀 포레스트' 등장한
'역전상회' 50여 년간 한자리
폐교 활용한 박물관도 재미


[주말& 여행] 군위 화본리 화본역, 80여년 세월 추억이 차곡차곡…정겨운 간이역 고향 같구나
화본역사 옆에는 아름드리 고목의 정원이 있다. 새마을호 객차를 활용한 레일카페 뒤로 급수탑이 보인다.

◆군위 화본역

역 광장에 햇살이 가득하다. 2011년 어두운 핑크색이었던 역사는 햇빛을 받아 이제 희미한 핑크가 되었다. 연분홍 코스모스에 앉은 회색 잠자리 날개 같은 빛깔이다. 열린 창속에 역무원 아저씨 한 분이 등 돌려 앉아 계신다.

화본역이 처음 지어졌던 때는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이라 한다. 이후 1938년부터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때는 증기기관차였다. 시장이 없는 이곳 주민들은 멀리 영천 장으로 기차를 타고 오갔다. 1950년대에 디젤기관차가 등장하고, 1970년대 전기기관차가 도입되는 등 철도 역사의 변화와 함께 화본역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래도 이 작은 간이역에는 아직 기차가 선다. 군위군에서 유일하게 기차가 서는 역이다.

지금 화본역은 1936년 처음 지어졌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폐선철로 및 간이역 관광자원화 사업'으로 '화본역 그린 스테이션' 사업이 선정되면서 옛 모습은 살리고 편리는 더했다. 역사 옆에는 빨간 우체통과 2006년에 세운 박해수 시인의 '화본역' 시비가 있다. 나무들은 그사이 훌쩍 자랐겠다. 나이 많은 능수버들 뒤로 또 그만큼이나 나이 먹은 고목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고목들의 정원 가장자리에 이제는 달리지 않는 2량의 기차가 서있다. 새마을호 객차를 활용한 레일 카페다. 기차 위로 솟아난 급수탑이 보인다. 급수탑으로 가려면 승강장을 건너야 한다.

대합실 안에는 옛날 역무원들이 쓰던 모자와 깃발 등 낡은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화본역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들도 벽을 채우고 있다.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멘 사람들이 사진 속에서 기차를 타고 내린다.

승강장에 낯선 말간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지난 2월부터 방영 중인 '손현주의 간이역'을 이곳에서 촬영했단다. 제1회 촬영지였다. 의자에 유해진·김상호 배우의 이름이 남아 있다. 하루에 상행 열차가 3번, 하행 열차가 3번, 또 여객이나 화물차가 그저 지나쳐 가버리는 게 40회나 된다는데 기차는 오지 않는다. 말간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열차를 타고 화본역에 내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철길을 건너 노반 아래로 내려서면 들이다. 들 너머에는 구천(九川)이 흐른다. 물소리는 들리지 않고, 길가 노란 씀바귀와 애기똥풀은 낮잠처럼 평화롭다. 들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 급수탑이다. 1930년대 말에 지어진 급수탑은 이제 담쟁이와 빛과 사람들에게 제 존재를 내어주고 의젓하게 서있다. 안에는 상상의 동물 기린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고 있다. 쏟아지는 빛 속에 은빛 나비들이 차르르 난다. 탑의 작은 창문에는 소녀와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소녀를 바라보고 소녀는 먼 곳을 바라본다. 기차는 언제 오나 하는 듯 바라본다.

기차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기차를 기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 역 광장을 서성인다. 아이들과, 엄마와 아빠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연인들이 있다. 지금도 화본역은 데이트 장소다. 또한 나들이 장소고 바쁘게 쉬는 장소다. 이곳이 오래된 추억인 양 볼이 부푼 사람들이 고목의 그늘에서 화본역을 바라본다.

[주말& 여행] 군위 화본리 화본역, 80여년 세월 추억이 차곡차곡…정겨운 간이역 고향 같구나
꽈배기집, 고깃집, 분식집, 카페, 역전상회 등이 늘어서 있는 역전거리.
[주말& 여행] 군위 화본리 화본역, 80여년 세월 추억이 차곡차곡…정겨운 간이역 고향 같구나
만지면 무병장수하고 후손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화본리 고인돌.

◆화본마을

화본역 입구 양쪽으로 분식집과 새로 생긴듯한 고깃집, 유명한 꽈배기 집, 군위의 명물인 자두빵을 파는 카페가 있다. 언젠가부터 지방자치 단위에서 특산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기억에 실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약간 새콤하면서 단 자두빵도 좋았다. 무엇보다 예쁘다.

역 정면으로는 역전상회가 자리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역전상회가 나온다. 혜원(김태리)과 은숙(진기주)이 가게 앞에서 군것질을 하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재하(류준열)가 옛 여자 친구와 나란히 지나갔다. 재하는 화본역 승강장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래서 그녀는 버들가지 하나 꺾어가지 못했구나. 역전상회는 50여 년간 한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역전상회에서 왼쪽으로 가면 1954년에 개교해 2009년 폐교된 산성중학교가 있다. 지금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라는 근현대사 박물관이다. 풍금이 있는 교실, 모서리가 반드르르한 나무 의자와 책상, 도시락이 올려 진 난로, 누군가의 일기장이 놓인 선생님 책상, 출석부가 있는 교탁, 그리고 벽에는 반공 포스터와 그림일기가 붙어 있다.

복도는 옛 골목길이다. 옛날 라디오와 축음기가 진열된 6·25전쟁 당시의 소리사가 있고, 사진관과 이발소가 있고, 연탄가게와 옥탑방, 방앗간, 전파상, 군것질거리 가득한 역전 상회도 있다. 다방에는 '포니2 픽업' 자동차가 서있다. 시간이 거꾸로 날아 엄마 아빠 어렸을 적의 옛날로 우리를 데려간다. 운동장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빼곡히 살거리, 놀거리, 볼거리, 탈거리가 늘어서 있다. 주말이면 운동회 날처럼 벅적거린다.

역전상회의 오른편은 산성면소재지의 메인 스트리트다. 길 양쪽을 따라 경찰서가 있고, 마을회관이 있고, 방앗간과 국숫집, 다방과 중국집, 전파상, 교회, 만지면 무병장수하고 후손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고인돌과 새롭게 재현된 군위경찰서 산성지서가 있다. 옛 철도관사도 남아 있다. 한 채는 허물어져 풀로 뒤덮였고 한 채는 숙박시설로 단장돼 있다. 길 가 담벼락에는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속 다양한 이야기가 그림으로 펼쳐진다. 반듯한 화본정미소를 지나면 회나무 상회 앞에 300년 된 회화나무가 경이롭게 서있다. 나무는 마을의 어귀고 마을의 마무리고 또 갈라지는 길의 이정표다. 안녕, 그리고 바쁘게 잘, 쉬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팔공산 한티재를 넘거나 팔공산터널을 통과해 군위 부계 지나 산성면 쪽으로 가면 면소재지 안에 화본역이 있다. 상주영천고속도로 동군위IC에서 내리면 부계 교차로에서 부흥로를 타고 가면 된다. 중앙고속도로 군위IC에서 내리면 5번 대구 방향으로 가다 간동삼거리에서 좌회전, 91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백양삼거리에서 우회전, 28번 국도를 타고 가다 화본역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79번 도로를 타고 가면 산성면 화본마을이다. 레일카페는 보통 평일에는 문을 닫고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방학 기간에 문을 연다고 한다. 화본역 승강장으로 나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만 6세 이상 1인 1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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