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뇌병변장애 2급 극복 초등교사 꿈꾸는 청년...그 뒤엔 어머니가 있다

  • 김호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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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28 19:37  |  수정 2021-09-29 09:04
최건/동네뉴스
올해 3월 장애특별전형으로 대구교육대학에 입학한 최건과 어머니 구미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엄마의 뱃속은 너무 재미없고 지루했다. 세상이 몹시 궁금했던 나는 수정 7개월 만에 출생신고를 마쳤다. 성격 급한 나는 출생 시 몸무게 1.8㎏에 불과했다. 엄마 냄새도 제대로 못 맡고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생후 1개월에 2번의 뇌출혈로 수술이 시작되어 4년 동안 꼬빡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내 인생 보고서에 중요한 밑줄 하나. 돌 무렵이면 누구나 떼는 발자국을 기다려온 지 어언 8년. 드디어 직립보행에 성공했다. 걸음마를 함으로써 뇌병변장애 1급은 2급으로 강등되었다.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입학을 아홉 살 인생에 이뤄냈다. 한글 떼는 것도 이때 이룬 쾌거였다. 초·중등시절 학교 등교일수는 거의 반타작 수준. 어린 시절은 총 15번의 수술과 재활로 얼룩진 고통의 나날들로 기억되었다." (최건의 메모에서 발췌)


지난 25일 오후 3시. 대구시 남구 앞산네거리 한 카페에서 만난 최건(21·대구교대 1년)씨는 환하게 웃었다. '교대입학 뇌병변장애 학생 1호, 문학영재원 1호'의 주인공. 분홍빛 셔츠를 입은 그는 벌떡 일어나 배꼽 인사를 했다. 동그란 안경테 너머 생기발랄한 기운이 넘쳐 보였다. 교정시력이 0.6 정도에 불과하단다. 그의 팔꿈치는 도도록했다. 넘어져서 상처가 나고, 조금씩 나으면서 살이 붙은 흔적으로 짐작된다. 시력이 약하고 다리에 힘이 없는 그로선 넘어지는 게 일상이나 다름없다.

 

최건/동네뉴스2
올해 3월 장애특별전형으로 대구교육대학에 입학한 최건과 어머니 구미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올해 대구교대 입학한 최건씨, 대구교육청 문예창작영재원에 선발돼 중·고교 동안 활동

어머니 구미선씨는 100여권의 책 차에 싣고 다니며 재활치료 아들에 읽어주고 또 읽어줘

최씨 "뇌병변장애 환자도 선생님 될 수 있고,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최씨는 아동보호센터 돌봄교실의 멘토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5~14세 아이들은 "형아샘! 놀아줄까?" 하며 보드게임, 체스놀이를 가르쳐준다. 아이들과 게임을 할 때마다 '나는 저 때 뭐했지?'라며 실웃음을 짓는다. 최씨에게 어린 시절 추억은 거의 없다. 병원 침대나 재활 시설에서 간호사나 물리치료사들과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다.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이 아무리 괴성을 질러도 최씨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좋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게 최씨의 꿈이다.


학창시절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특별한 무기가 있었다. '글쓰기 신공'과 1분에 400타인 타자 실력이다. 중학교 때 '드림클래스'에서 성적이 향상되면 문화상품권과 고교전액장학금을 지급한다고 해 공부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다독, 다작, 다상량 (多商量)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구시 교육청 문예창작영재원에 선발돼 중·고교 6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했다. 작가와의 만남, 문예창작 캠프 참가, 글쓰기발표회에 열정을 쏟았다. '현진건문학상'을 3년 연속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문학적 재능의 배경은 어머니 구미선(54·대구시 남구 대명동)씨이다. 수술과 재활의 연속이었던 시절 구씨는 아들이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100여권의 책을 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가장 좋아했던 '아기사슴 담비' '브레멘의 음악대' 등의 동화를 글자도 모르는 최씨가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줬다.


구씨는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재활 승마를 가던 새벽길, 발을 내딛는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아들에게 걸으면서 시 한편을 짓도록 권유했다. 아들의 시가 고스란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며라고 밝혔다. 또 "사지마비가 와서 운동신경이 전달되지 않지만, 시기에 맞는 수술과 물리치료로 근육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 세계적인 의료진의 실력과 물리치료사들의 정성으로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라며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에게 치료가 지지부진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재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지난 3월 대구교육대학에 장애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최씨는 "뇌병변장애 환자도 선생님이 될 수 있고,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장애의 편견을 깨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경험을 제공해 주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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