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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다. 선거전략의 관점에서는 피를 말리는 결선 투표를 치르는 것이 소위 '흥행'이나 '원팀 형성'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결과가 나온 이상 이는 다 지나간 이야기이고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제가 남았을 뿐이다.
반면 정권 탈환을 노리는 보수 야당은 상대방 쪽의 불확실성이 사라졌으니 주도권을 가지고 선거 구도를 짤 수 있게 되었다. 최종 결선에 오른 네 명의 후보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선거 구도의 논쟁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핵심은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에 맞서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이며, 나아가 각 후보가 어떤 점에서 더 유리한 선거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다.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대통령 선거전을 생각하면서 선거 구도와 시대정신의 상호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가늠자로 집권 여당의 익숙한 표현을 소환해 보고자 한다. 오래전에 YS와 JP의 기습적인 3당 합당으로 수세에 몰렸던 DJ가 권토중래를 노리면서 대반격을 위한 회심의 메시지로 내세웠던 문구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집권 여당은 이 문구를 지금까지도 정치적 정체성의 뿌리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민주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은 언제나 천하무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정치공동체라도 중산층과 서민이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이들의 정당이 숫자로는 소수파에 불과할 그 이외의 정당들을 당연히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산층과 서민을 하나의 정치적 연대 속에 묶어내는 작업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끊임없이 이 둘을 가르고 어떻게든 다시 연결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민주사회에서 소수파의 갖가지 정치적 책략이 피어나는 진원지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책략들을 시대정신을 통해 극복하지 못하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은 언제까지라도 허황한 정치적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한국 정치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내세운 정치세력은 양자를 묶어내는 시대정신을 제시하여 이를 막으려는 상대방의 선거 구도를 와해시켰을 때 집권할 수 있었다. 3당 합당의 호남 포위 구도를 DJP 연대로 받아치면서 수평적 정권교체와 햇볕 정책을 내세웠던 DJ나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세종시 건설을 비롯한 지역균형발전 구상을 내걸었던 노무현의 예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은 과연 이러한 선례를 제대로 재현해낼 수 있을까?
집권 여당으로서는 우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시각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취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5년 전 이맘때쯤부터 한국 사회에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사태를 맞아 촛불 혁명으로 지칭되는 광범위한 시민적 연대와 결집이 발생했다. 과연 집권 여당은 지난 5년 동안 촛불 혁명을 중산층과 서민의 연대와 결집으로 승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수 야당으로서는 무엇보다 중산층과 서민을 갈라놓는 차원에 머무를지 아니면 스스로 환골탈태하여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 거듭날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선거 구도의 유불리를 떠나 시대정신을 대표하려면 당연히 후자의 입장에 서야 할 것이나 점점 거칠어지는 후보들 간의 자질 공방을 고려할 때 과연 그러한 선택이 가능할까?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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