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종부세 폭탄이라고?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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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5   |  발행일 2021-11-25 제22면   |  수정 2021-11-25 08:52
작년 민간보유 토지 상승분
우리나라 내년 예산 웃돌아
무주택자 900만 가구 허탈
부동산 상위 2% 옹위보다
불로소득·불균형 해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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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772조원. 이게 뭘까. 2020년 민간보유 토지 상승분이다. 한 해 동안 그들의 부동산이 무려 772조원이나 올랐다는 말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우리나라 내년 예산은 604조4천억원. 올해 본예산보다 8.3% 늘어난 규모이며 사상 첫 600조원 돌파다. 명실공히 슈퍼예산이라 할 만하다. 한데 그래봐야 772조원 발밑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총합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주택 소유자 중 상위 10%의 평균 집값은 하위 10% 평균 집값의 47배였다. 2016년 33.8배보다 더 심화됐다. 상위 10%의 집값이 1년간 2억600만원 상승할 때 하위 10%는 고작 10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부동산 불균형의 병폐이자 민낯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종부세를 '폭탄'으로 규정하며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고 장기적으론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 말대로 '종부세 폭탄'은 팩트 일까. 종부세는 공시가격, 공정시장가액비율, 세율 세 가지로 산정한다. 올해는 이것들이 다 오르니 얼핏 세금 폭탄이 투하될 법하다. 하지만 서울 마포에 공시가격 11억6천만원 아파트(시가 15억~16억원)를 한 채 보유했다면 종부세는 20만원 정도다. 공시가 11억원 이하는 아예 종부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초고가 아파트라도 1주택이면 150% 상한선에 걸려 세금 인상이 제한적이다. 이걸 '폭탄'으로 치부한다면 언어 인플레라고 할 수밖에. 다만 조정지역 2주택자와 3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가중되는 건 사실이다.

선진국은 어떨까. 미국은 주마다 세율이 다르다. 위스콘신주에선 6억원짜리 주택을 소유하면 1천만원가량의 재산세가 부과된다. 종부세는 따로 없다. 우리나라 6억원 아파트의 재산세는 100만원도 안된다. 보유세 실효세율은 영국·캐나다의 5분의 1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치보다 훨씬 낮다.

재정을 마구 풀어 국민의 환심을 사는 것도 포퓰리즘이지만 준거(準據) 없이 세금을 깎아주는 행태 역시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뭐라 해도 보유세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부동산 투기억제 수단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참패도 보유세 강화를 미적거리다 실기한 탓이다.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를 무력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해 투기 망령을 깨웠다. 부동산 폭등의 원죄가 있는 정당이 또 저지레를 할까 걱정이다. 부동산 안정화의 고삐를 죄지는 못할망정 덥석 잘라선 곤란하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지만 무주택자가 여전히 900만 가구를 웃돈다. 지난해 토지 소유주들이 772조원의 꿀물을 빨 때 무주택 서민의 부동산 소득은 제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들의 부동산이 오른 만큼 무주택자의 주머니가 털린 꼴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종부세를 폐지한다? "종부세 폭탄" 운운하며 부동산 상위 2%를 옹위할 게 아니라 무주택자의 경제손실 보전과 박탈감 해소에 정책의 핀트를 맞춰야 한다. 종부세 폭탄을 맞아 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서민들이 부지기수다.

'불평등의 대가'를 저술한 조세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때로는 정치가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일갈했다. 윤석열 후보가 종부세를 폐지한다면 스티글리츠의 지적대로 정치에 의해 경제·사회 불평등이 심화하는 형국이 연출될 것이다. 상위 2%를 위한 세금 깎아주기 시전을 펼칠 계제는 아닌 듯싶다. 불로소득과 고질적 부동산 불균형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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