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 냉수샤워론 부족…차라리 구급차 부를까 고민하기도”

  •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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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09 19:13  |  수정 2025-07-09 20:42  |  발행일 2025-07-09
[르포]쪽방촌 9년차 정만수씨 폭염나기
후원 끊기자 전기세 감당 못 해…에어컨은 있어도 무용지물
“냉수 샤워로 버틴다, 뜨거운 열기 속 밤새 뜬 눈으로 견뎌”
대구시, 역대급 폭염에 쪽방촌 지원 수단 강구 중
대구 낮 최고기온 35.9°C까지 오른 9일 오후 대구 중구 쪽방촌에서 정만수(59)씨가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 낮 최고기온 35.9°C까지 오른 9일 오후 대구 중구 쪽방촌에서 정만수(59)씨가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 낮 최고기온이 35.9°C까지 오른 9일 오후 대구 중구 쪽방촌에서 정만수(52)씨가 머리를 감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 낮 최고기온이 35.9°C까지 오른 9일 오후 대구 중구 쪽방촌에서 정만수(52)씨가 머리를 감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낮 최고기온이 35.9℃을 찍은 9일 오후 2시쯤, 대구 중구 향촌동 한 골목.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을 들어가봤다. 골목 중간쯤엔 낡은 여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부를 살펴보니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갈라진 나무 문들이 복도 양쪽에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이른바 '쪽방촌'으로 불린다.


복도 제일 안쪽에 있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정만수(59)씨를 만났다. 올해로 쪽빵촌 거주 9년차라고 했다. 정씨는 한때 부산에서 오징어잡이 배에서 어부로 일했다. 하지만 9년 전 조업 도중 갑자기 몰아친 파도에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후 몇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은 남아 있다. 수술 후유증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됐다. 직장마저 잃게되자 정씨는 결국 대구 쪽방촌에서 기거하게 됐다.


쪽방촌 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정씨에게 대구의 '여름'은 절대 마주하고 쉽지 않은 불청객이다. 이날 정씨가 문을 활짝 열어두고 선풍기를 켜 놔도 방 안의 뜨거운 공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방 안을 맴도는 열기 때문에 잠을 잘 수도, 가만히 누워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방 한 켠에 덩그라니 놓인 물통 두 개도 1~2시간만에 금새 바닥났다.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정씨의 '폭염나기'는 계속 진행행이었다.


그는 "낮이면 몸이 축 처지고 숨이 막혀서 그냥 날이 새기만 기다린다. 기운이 없어 어디로 움직일 수도 없다. 밤에도 방 안이 식지 않아서 잠자리를 설친 지 한 달은 지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최근 며칠은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차라리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수차례 있었다"고 했다.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던 중 정씨는 갑자기 방을 나간 뒤 복도에 있는 공용화장실로 향했다. 냉수 샤워로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란다. 연신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한편으론 냉수 샤워를 할 수 있는 이곳이 그의 유일한 피서지였다. 그는 "너무 더운 날엔 하루에 6~7번 샤워를 한다. 하지만 몸을 말리고 나면 금세 다시 더워지기 일쑤다"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무더위 쉼터'에서 여름철 내내 하루종일 앉아 있기도 많이 머쓱하다.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나만의 안정적인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한다. 다른 쪽방쪽 주민보다 여름철 살림살이가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지난 6월말 기준 정씨와 같은 대구지역 쪽방촌 거주자는 모두 533명.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에다 고령자다. 요즘 대구시 차원에서 쪽방촌 내 주거환경에 따라 대형 선풍기와 냉방기를 마당이나 복도에 설치하고 있다. 정씨가 머무는 쪽방촌엔 이미 설치가 완료됐다.


그는 "방 안엔 허리춤 높이의 매트리스와 얇은 이불, 낡은 TV 한 대가 전부다. 방이 좁다 보니 몸을 가누기가 여간 쉽지 않다"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방세를 내고 약값이랑 식비를 해결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일을 할 수 없으니 별다른 수입도 없다. 쪽방민 중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 나도 이 정도인데, 고령의 어르신들은 이번 여름도 '그냥 하루하루 버티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행정당국도 쪽방촌 거주민들의 폭염나기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대구시 측은 "올해는 당초 예상과 달리 폭염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쪽방촌 건물 외벽에 '열 차단 페인트(실내온도 4~5도 저감 효과)'를 시공하는 방안과 에어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임시 숙소 마련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며 "쪽방촌 거주민들에게 폭염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 문제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생존권' 확보에 문제가 없도록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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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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