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용에 관한 기억

  •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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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0   |  발행일 2022-03-10 제22면   |  수정 2022-03-10 07:12
삼국유사 건국설화에 등장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존재
물처럼 백성들 살림 책임져
새 대통령 용의 조화 본받아
국민에 단비 같은 존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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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어린 시절 정월 보름의 어떤 새벽, 밝음과 어둠이 섞여 있는 혼돈의 시간. 할머니는 쌀과 대추 등을 바구니에 담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다. 나는 창호지로 사면을 바른 작은 등을 들고 할머니를 따라갔다. 집에서 1.5㎞쯤 가면 깎아지른 바위 아래에 있는 깊은 소(沼)가 나온다. 봉비암 양정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소는 무서우면서도 신비로웠다. 혼돈 속에서 휘돌아 흐르는 검은 물소리는 그것을 더욱 증폭시켰다.

양정소 주변에는 백사장이 있었고, 할머니는 가지고 갔던 바구니를 그 백사장에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바구니에 담긴 음식을 꺼내 소를 향해 던지고, 소지를 태우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열심히 기도하셨다. 뒤에 안 것이지만, 물속 용궁에 사는 용왕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집안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를 '용왕 먹이기'라 불렀다. 그때 할머니는 집안에 아무 탈이 없고, 아이들 건강하게 잘 자라고, 농사도 풍작이 되게 해달라고 기원하셨을 것이다. 용왕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숭배다. 신비한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 용은 무궁무진한 조화의 능력이 있다고 믿어왔으며, 특히 물과 깊은 관계를 지닌 수신(水神)으로 신앙 되어왔다. 용은 순우리말로는 '미르'이며, 이에 따라 은하수는 용천(龍川), 즉 '미리내'이고, 용을 뜻하는 진(辰)도 '미르진'으로 읽는다. 물과 은하수와 용은 모두 같은 계열의 의미망을 거느리고 있으며, 우주의 조화를 관장하며 생명을 다스리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의 고전 중의 고전인 삼국유사에도 용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온다. 공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지만, 일연은 제왕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신이한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신이사관(神異史觀)에 입각해 삼국유사를 썼다. 논리 이전의 논리와 논리 이후의 논리로 우리나라의 위대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신이성을 설명하는 자리에 등장했던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용이었다.

탈해왕조를 들어보자. 탈해는 바다를 통해 한반도로 와서 먼저 가락국에 정박했다가 다시 신라 땅인 계림의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에 이른다. 그때 혁거세왕에게 물고기를 잡아 진상하던 아진의선이 새벽에 바다로 나가 배를 발견한다. 배 안에 실려 있던 궤를 나무에 걸어놓고 길흉을 점친다. 궤에서 나온 탈해가 자신은 용성국 사람으로 어머니가 자신을 알로 낳았기 때문에 배에 실려 붉은 용의 호위를 받으며 신라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사연을 말한다.

탈해는 용왕이 다스리는 용성국 출신이며, 태양에 비친 파도일 듯한 붉은 용의 호위를 받으며 바다에서 들어왔으니 이 이야기는 온통 물로 되어 있다. 바다는 그 자체가 물이고 용은 또한 물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용왕의 아들로 용의 호위를 받으며 물의 흐름에 따라 인연있는 땅 신라로 온 탈해, 그는 남해왕의 맏딸을 아내로 맞아 노례왕에 이어 신라의 제4대 왕이 된다. 생명을 상징하는 물에서 발원하여 신라의 왕이 된 것이다.

기(氣)가 모여 이슬이 된다. 이를 항해(沆瀣)라 하는데, 이슬은 결국 기의 외현태다. 이슬이 모여 샘이 되고, 샘에서 물이 넘쳐 개울이 되고, 개울이 강이 되고, 다시 바다를 이룬다. 물은 수많은 어족을 살리고 나무를 살리고 사람을 살린다. 살리며 사는 것이 바로 살림살이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처럼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새 대통령은 용의 조화로 우리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단비같은 존재였으면 한다. 매화꽃 화사한 이런 봄날에!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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