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준의 閑談漫筆] 방외(方外)

  • 하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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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  발행일 2022-03-11 제22면   |  수정 2022-03-11 07:06
국정운영자에 달린 백성 명운
누구나 자유롭고 공정한 나라
살고 싶다고 긍지 느끼는 나라
그런 새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우리 땅이 이상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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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세상 속의 세상 밖. 그런 곳을 방외라고 한다. 방향이나 장소를 특정할 수 없어 쉽사리 찾지 못할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을 방외사 혹은 방외거사라고 부른다. 고전문학작품에 나오는 죽림이니 산림이니 하는 말과 그 의미가 유사하다. 모두 깊은 자연 속이라는 뜻으로 번잡한 강호, 즉 도시를 떠나 있다는 말이다.

방외로 알려진 곳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의 예언서 정감록에 적혀 있는 십승지다. 이는 가야산 만수동을 비롯하여 가장 이상적인 삶의 터전 10곳을 뜻한다. 승지는 경승지의 준말로 경치와 풍광이 아주 좋은 곳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 길지·복지·명당 등의 뜻을 갖고 있기도 하다.

무릉도원은 4세기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이상향이다. 복숭아는 천상의 과일로 여겨져 왔는데 그것을 따 먹으면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고 하여 세상 사람들이 동경해 왔다. 그래서 복숭아나무가 지천으로 있는 곳을 수운향(水雲鄕,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비정했는지도 모른다.

경북 상주에는 우복동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병란·기근·질병의 삼재를 피할 수 있다는 곳이다. 속리산 기슭 그 어디쯤이라고 하면서 천장지비라는 말을 덧붙인다. 하늘이 감추고 땅이 비밀스럽게 여겨 세속인들은 찾을 수 없다는 곳이다.

중국의 이상향에는 복숭아가 그 배경이 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길지는 소가 곧잘 등장한다. 우면지는 소가 편안히 잠을 잔다는 곳이고, 와우지형은 소가 누워 있는 지형이라는 뜻이다. 우복동 역시 소가 배를 깔고 있다는 의미의 땅이다. 우리 조상들은 소를 영물로 보았기에 그 영물이 편안히 있는 곳은 길지나 명당으로 본 것이다.

십승지니 무릉도원이니 우복동이니 하는 말은 세상이 살기 어렵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백성들은 마음속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도피처가 필요했다. 살기 좋은 곳을 꿈꾸는 백성의 염원이 그러한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요즈음 각박하고 혼잡한 세상과 떨어져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일명 자연인을 꿈꾼다. 도피든 회피든 현실을 탈피하고 싶다는 면에서는 방외를 꿈꾸던 옛사람들과 같다. 현실을 떠나고픈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난세의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난세를 태평성대로 만든 임금도 있었고 태평성대를 화란(禍亂)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임금도 있었다. 나라와 백성의 명운이 한 사람의 국정 운영자에 달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큰 선거는 끝났다. 당선인이 제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국민통합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소임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통합은 내 편 네 편이 없는 것을 말한다. 당동벌이가 아니다. 옛말로는 탕평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젠가부터 서로 토착왜구니 좌빨좀비니, 일베니 대깨니 하는 못된 프레임을 씌워 왔다. 그리하여 정치적 견해가 다른 상대방은 철천지원수가 되어 친구도 이웃도 심지어 가족 간에도 서로 없어져야 할 적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한 사회가 새 시류를 타고 분명히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역사는 건물이 아니다. 허물고 다시 세울 수 있는 속성이 아니다. 반면에 미래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울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 꿈같은 이상향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누구나 자유로우면서도 공정한 나라, 그리하여 국민이 살기 좋다고 긍지를 느끼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든다면 우리 대한민국 모든 땅이 방외가 아니겠는가. 오직 당선인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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