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순섭의 역사공작소] 문화원형과 종다양성

  • 함순섭 국립대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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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3   |  발행일 2022-03-23 제26면   |  수정 2022-03-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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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순섭 (국립대구박물 관장)

근 30년 전의 일이다. 장단콩으로 유명한 경기도 파주시에 콩 박물관을 유치하고픈 분이 찾아왔다. 앞서 경주 황성동유적에서 불에 탄 콩을 발굴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름 콩의 역사가 궁금하기도 해서 만났다. 왜 파주여야 하는지, 건립조건은 어떠한지, 건립 프로그램은 어찌하는지 등등을 문답하였다. 그런데 이분은 취지를 설명하며 줄기차게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라고 주장하였다. 이전에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의 넓은 범위를 원산지로 알고 있었기에 그 근거를 물어보았더니, 의외로 답은 간단하였다. 원시 유전자원을 지닌 야생 콩이 세계에서 한반도에 가장 많기 때문이란다. 아울러 오늘날 세계 콩 산업의 기반은 1920년대 미국인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3천300여 가지의 야생 및 재배 콩 종자를 가져가 육종하여 만들어졌노라고도 했다. 이제야 살펴보니 파주의 콩 박물관은 진척되지 않았고, 2015년 경북 영주에 '콩세계과학관'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뜬금없이 콩을 이야기한 이유는 근래 조금 시끄러운 어떤 문화원형 때문이다. 근대학문인 고고학은 생물학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정 요인을 결정론으로만 몰아가지 않는다면 생물학의 기본 개념은 문화현상을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특히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에 기반을 둔 개념은 고고학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데 즐겨 응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한 곳의 문화가 오롯이 만들어지고 발전하며 소멸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면, 즉 역사적 맥락이 분명하다면 그 문화유형은 그곳의 고유한 문화원형이다. 이 일련의 맥락에서 벗어나 어느 한 단계부터만 나타나거나, 스치듯 반짝이거나, 변이형만 있는 경우는 고유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울러 다양한 원시형에서 우세형이 만들어지고, 우세형을 기반으로 수많은 변이형이 공존하며, 그 우세형이 퇴화하여 흔적기관으로 남아 그다음 문화유형에 새겨지는 현상 또한 고유한 문화원형에서만 뚜렷하다. 비록 발전의 동인이 안팎 모두에서 상호작용할지라도 문화원형의 변화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근년에 김치와 한복이 동북아시아 정치 상황처럼 들볶이고 있다. 역사적 맥락이란 관점에서 살펴보면 정말 하찮은 논란일 뿐이다. 김치와 한복의 문화원형과 종다양성 모두는 우리에게 있고 그 미래 또한 우리의 몫이다. 이 둘은 이미 세계에 던져졌고,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체제의 틀 속에서 역사를 살피고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하찮은 해석을 내놓지 말고, 서로 쩨쩨하게 굴지 말자.

<국립대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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