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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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31   |  발행일 2022-03-31 제22면   |  수정 2022-03-31 07:13
언어의 자의성이 무시되는
이름이 운명을 결정 '성명학'
조상들 신중하게 이름 지어
왕의 이름 독특한 漢字 선택
신의 영역엔 호명도 금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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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고전의 고전적 정의는 누구나 읽었다고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다. 필자에게 오그덴과 리처드, 두 명의 학자가 저술한 '의미의 의미'가 바로 그러한 책이었다. 강의실에서 이 책에 나오는 의미 삼각형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지만 천천히 원전을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필자의 게으름에 돌을 던질 분은 참아 주시길!). 최근에야 기회가 닿아 이 책을 고전의 반열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고전 덕분에 잊고 지내던 기호의 위상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현대 언어학의 관점에서 언어는 기본적으로 기호와 의미의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 관계에서 어떤 필연성을 찾을 수 없다. 즉 우리는 사과를 '사과'라고 부를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특성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한다. 참 재미없는 이야기이지만 언어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원리다. 언어학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겠으나 언어의 자의성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는 주장이 오늘날까지도 당당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기호가 영적인, 주술적인, 마법적인 힘의 원천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에 기인한다. 이러한 전통의 현대적 계승자가 바로 성명학이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명학의 핵심을 이루는 명제이다. 여러분은 야구를 잘 하기 위해 또는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 이름을 바꾼 사람들의 성공담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수많은 실패담의 예외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든 작명이란 행위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당당히 화폐로 교환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름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고 감추어야 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상식이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어릴 때 부르는 아명(兒名), 관례를 치른 다음에 부르는 자(字)가 따로 있었다. 또한 비교적 자유롭게 여러 개를 짓기도 했던 호(號)도 이름을 대신하여 사용되었다. 선비의 이름을 대하는 태도가 이러한데 왕의 이름은 어떠했겠는가? 왕의 이름으로 선택된 한자는 아예 사용이 금지되었다. 특정한 한자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임금의 이름은 거의 전부 한 글자로, 흔히 사용되지 않는 글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유대교의 전통에서 신의 이름 '야훼'를 부르는 것은 금지된다. 사실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에 그 정확한 발음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야훼'라는 명칭은 추정의 소산이다. 흔히 신의 이름으로 생각하는 이슬람의 '알라'는 특정한 신의 이름이 아니라 유일신을 의미한다. 1997년에 나이키는 운동화에 아랍어 '알라'를 연상시키는 로고를 새겨 출시한 적이 있다(실은 'Air'를 새긴 것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나이키는 이슬람 교인들의 격렬한 항의를 견디지 못하고 공개 사과와 제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그들은 왜 신의 이름(또는 그것을 닮은 로고)이 새겨진 신발에 분노하는 것일까? 이들의 사고에서 현대 언어학의 자의성, 기호와 의미의 분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알라'라는 기호는 곧 신이다. 즉 기호 안에 의미가 담겨 있다고 인식하는 셈이다. 아랍 문화에서 신발은 모욕을 의미한다는 점도 사건의 심각성을 증폭시켰다. 그렇다. 신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는 게 아니다.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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