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2)

  • 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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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2   |  발행일 2022-04-22 제37면   |  수정 2022-04-22 08:33
사랑에 빠진 타치야나가 오네긴에게 편지 쓰는 하루 '최고의 명장면'

오네긴
영화 '오네긴'에 나오는 타치야나의 편지 장면.

필자는 2022년 첫 번째 기고문에서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오페라보다는 원작인 푸시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설명에 더 비중을 두었고, 두 번째 기고문에서 차이콥스키 오페라에 대한 소개를 하겠다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두 번째 기고문의 원고를 쓸 무렵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했고 그 참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러시아 출신 음악가의 '평화를 위한 행보'에 관한 글을 썼다. 따라서 이번에 소개하는 오페라는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다소 빈약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보다 상세한 배경 설명은 첫 번째 기고문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이제 원래의 계획대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에 집중해보자. 이 오페라는 전체 3막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막은 시골 마을 지주의 미망인 라리나, 그녀의 두 딸인 타치야나와 올가, 그리고 유모 필리피예브나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오네긴과 렌스키의 등장, 유명한 편지 장면을 포함한 타치야나의 사랑 고백과 오네긴의 거절로 끝이 난다. 2막은 타치야나의 생일 파티, 오네긴이 올가에게 춤을 추자고 하면서 일어나는 렌스키의 질투, 렌스키와 오네긴의 결투, 렌스키의 죽음이다. 3막은 오네긴과 타치야나의 재회, 오네긴의 사랑 고백과 타치야나의 거절 등의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1막의 배경은 러시아의 소박한 시골이다. 작곡가는 이 시골의 분위기를 농부들의 합창으로 표현했다. 이 노래는 독창자가 먼저 주창을 하고 합창이 이어받는 형식이며, 그 내용은 짝사랑에 관한 것이다. 곧 일어날 타치야나의 운명 같은 만남과 사랑을 암시하는 것이다. 곧이어 오네긴과 렌스키가 등장해 타치야나와 그녀의 동생 올가를 만나는 장면은 네 사람의 4중창, 올가를 향한 렌스키의 사랑 고백이 담긴 유명한 아리아를 포함한 2중창, 수줍어하는 타치야나와 냉소적인 오네긴의 2중창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작인 푸시킨의 작품은 당시 러시아인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라 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작품이었고 차이콥스키 역시 이 작품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그는 특히 여자 주인공 타치야나의 순정, 진실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표현하는 감정적 뉘앙스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타치야나가 오네긴을 처음 만나고 사랑에 빠진 순간, 그 뜨겁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오네긴에게 편지를 쓰던 그녀의 하루에 집중했다. 이 '편지 장면'은 오페라에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작곡가는 오페라의 대본이 완성되기도 전에 이 부분의 작곡을 먼저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 대해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이 장면을 작곡하는 것에 완전히 몰두되었다. 나는 완전히 타치야나가 되었고,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되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오네긴에 대해 격분한다….'

이 편지 장면은 타치야나의 방에서 그녀가 편히 잠들도록 도와주려는 유모가 불안해하는 타치야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타치야나는 잠을 잘 수 없다고 대답하며 오네긴을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주저하는데, 작곡가는 오케스트라의 트레몰로로 그 불안감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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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자신이 상처를 받더라도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쓴 편지를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그것을 찢어버리고 다시 쓰기도 한다. 타치야나는 드디어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는 기쁨과 동시에 이 편지를 읽을 오네긴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자신을 거절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럼에도 다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운명론에 빠지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작곡가는 타치야나의 내적 감정을 매우 깊이 있게 표현하는데 이 장면은 소프라노의 독창으로만 이루어졌고 약 12분간 진행된다. 이 오페라 전체에서 이처럼 한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장면은 없다. 그만큼 그녀의 순수한 열정, 첫사랑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밀도 있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는 화려한 무대 연출 대신 매우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의 현실적인 이야기와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소녀 타치야나와 3막의 성숙한 여인 타치야나의 변화가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렌스키와 오네긴 역시 현대 사회와는 전혀 동떨어진 과거의 인물들임에도 그 내면의 인간적인 모습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주제는 언제나 인간과 운명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이 직면하는 운명, 거기에 맞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투쟁과 좌절, 인간의 숙명인 죽음과 같은 삶의 과정에서 관찰되는 인간의 감정적·정신적 측면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이런 점을 이해하고 그의 오페라, 더 나아가 교향곡들까지 감상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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