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뇌출혈 수술, 그리고 연이은 혈족의 타계 등으로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낸 시기동. 그가 지금처럼 파릇하게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헌신,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잠재능력을 일깨워준 통기타 덕분이다. |
통기타,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아무도 모른다. 대다수 통기타 가수는 누구 때문에 입문하고 그때부터 독학으로 어느 정도의 문턱까지 실력을 연마시킨다. 하지만 그건 아직 포구에 갇혀 있는 수준이다. 다시 말해 방파제 안에 있는 내항을 바다라고 착각하고 있다. 실력의 신지평을 열기 위해선, 무대에서 악보 없이 반주기 없이 오로지 자기의 필로 자기만의 리듬과 애드리브, 바운스와 그루브를 갖기 위해선 방파제 너머 진짜 바다(정규앨범 개인 콘서트)로 가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유로운 선율의 맛을 다양한 각도로 칼집을 넣기 위해 화성악도 필수적으로 연마해야 한다. 대다수 기타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 단계까지 못 오고 다들 중도하차를 한다.
![]() |
이춘호 전문기자 |
태어나고 시작된 불행한 가족사
검은 터널 속 음악이 내밀어준 빛
김광석·이문세와 나만의 레퍼토리
이번달에 완성한 생애 첫번째 곡
미련만 남기고 가신 '그리운 아버지'
두번째는 아내 위한 '오늘도 감사해'
◆설상가상, 가족사
시기동. 올해 48세의 그는 검은색 삶을 통기타 하나로 파릇하게 꽃피워내고 있다. 기타 입문 6년 만에 남들이 수십 년 거쳐야 할 관문을 '알집 버전'으로 돌파해 주목받고 있다. 2019년 추석특집 KBS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서 우승. 이에 앞서 대구가요제, 대구장애인가요제, KBS전국노래자랑 남구 편에서도 입상. '사랑의가족'이란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나름 인지도를 갖게 된다.
20대처럼 앳돼 보이고 활기차 보이는 표정. 하지만 그와 조금 대화를 나누다 보면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정상적이지 못한 그의 안면 근육 때문이다.
산 넘어 산, 설상가상! 시기동의 지난날을 한 줄로 줄이면 그렇다.
![]() |
김광석 야외공연장은 그에게 남다른 공간으로 다가선다. |
38세에 영양사인 천사 같은 아내를 만나 5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결혼식 올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처남이 오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갑자기 사망한다. 두 해가 지나고 나서인가, 장모님이 또 급성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에 돌아가신다. 다섯 달쯤 후에는 장인까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즈음부터 그도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다. 뇌출혈이란 판정을 받는다. 날벼락이었다. 수술을 받고 누운 채로 한 달간 치료를 받았다. 생사를 오갔다. 잦은 수술로 왼쪽 눈은 완전 실명, 오른쪽 눈은 부분 실명 된 상태. 결국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는다.
검정 터널의 나날. 그걸 버티게 만든 건 아내와 통기타였다. 숨은 실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통기타에 재능을 보인다. 그렇게 가수로 점점 입지를 다져가던 중 코로나가 터지고 모든 공연이 줄 취소되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 하게 된다. 시간만 낭비하느니 음악을 전문적으로 더 공부해서 노래도 직접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경북과학대 뮤직프로덕션과(실용음악과)에 입학해 2년간의 공부 끝에 학위를 수료한다.
![]() |
2019년 KBS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서 우승한 뒤 아내, 고모, 담당 피디와 기념촬영을 했다. |
이번 달에 신곡 음원을 직접 하우스 레코딩을 통해 제작했다. 현재 5곡 정도 작곡해 뒀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독학 수준의 실력이었다. 내가 얼마나 못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열정적으로 돌아다닌 날들이었다. 원곡을 카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반복해 들으면서 음표를 하나하나 따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퀸의 명곡 'Love of my life', 그리고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 리차드 막스 'Now and forever' 등.
하모니카도 뺄 수 없으니 입술에 진물이 나도록 불어댔다. 피아노도 필수라 여겨 요즘도 하루에 2시간 남짓 연습한다. 하우스 레코딩 기술도 익혔다. 어느 날, 핸들링 할 수 있는 악보를 한데 모아봤다. 4권의 파일북이 생겨난다.
초창기에는 거의 김광석 노래에 꽂혔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른즈음에, 나의 노래,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랑했지만,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일어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 김광석 레퍼토리로 막강군단을 이룬다. 그래서 김광석 야외공연장은 남다른 공간으로 다가선다. 다음에 도전한 노래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붉은 노을, 사랑이 지나가면, 사랑은 늘 도망가, 슬픔도 지나고 나면, 가을이 오면 등이다. 이밖에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 벚꽃엔딩, 로이킴의 봄봄봄,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소리새의 통나무집, 김신우의 귀거래사, 이승철의 그런 사람 없습니다…. 얼추 50곡의 레퍼토리가 형성될 수 있었다.
생애 첫 곡을 이번 달에 완성했다. 미련만 남기고 타계하신 아버지를 위한 '그리운 아버지'란 곡이다. 두 번째 곡은 아내를 위한 '오늘도 감사해'. 물론 어머니를 위한 곡도 곧 만들 예정이다. 언젠가 올릴 개인 콘서트의 그날을 위해~ 시기동 파이팅!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