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행복방정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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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8   |  발행일 2022-05-18 제26면   |  수정 2022-05-18 07:15
평등은 진보의 방패

자유는 보수의 창

저기압·고기압처럼

비라는 방식으로 한몸돼야

비로소 행복방정식 완성

[동대구로에서] 행복방정식

문재인. 그는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개인의 시간을 복원하고 있다. 그가 취임 선서를 할 때 한 구절이 참 새롭다 싶었다. '출발은 평등, 과정이 공정하면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 말 중 가장 인상적으로 들렸다. 무슨 까닭인지 거기에는 '자유'란 단어가 없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거북함 때문이었을까.

만약 문 전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 타임이 내게 주어졌다면 그분에게 꼭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원래 종교는 다른 종파와 잘 합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종교 간 신사협정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희한하게 한국의 지식인들은 대화와 토론의 채널을 모두 잃어버린 채 유빙처럼 떠돌고 있다. 시민들은 유튜버 전사들의 편향된 정치인문학에 편승해 더욱 사분오열을 조장하고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자유와 평등파의 막가파식 분열이다. 남한과 북한의 대립보다 더 섬뜩한 구도다.'

자유파는 '보수', 평등파는 '진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이 둘을 접합할 수 있는 '접합제'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어떤 권력도 종교적 지도자도 스타도 예술가도 그걸 할 수 없는 것 같다. 자유가 '저기압', 평등이 '고기압'이라면? 둘이 합쳐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대지(大地)에 빌붙어 사는 모든 생명은 전멸한다. 자연은 인간의 미래를 위해 큰맘을 먹었다. 둘이 비라는 방식으로 한 몸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를 힐링시켜주는 이 찬란한 5월의 신록도 그 덕분 아닌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나라의 국격은 날로 상승 모드다. 세계 9위권 경제대국. 세계 1위권 한류 티켓도 여럿이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 백건우와 조수미, 조성진 등이 클래식, 방탄소년단이 대중음악,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오징어게임과 파친코가 드라마시장, 손흥민이 프로축구, 조선(造船)이 세계선박, 그리고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최근 유대인 CEO들이 '한류(K-megatrend)'를 보며 '한국주의보'를 발동했다.

나란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두 호위무사, 그가 바로 평등과 자유. 인격을 구축하는 핵심 부품이다. 평등은 자유란 에너지를 품고 행복마을로 진군한다. 그 과정이 공정이고 정의다. 인격은 그 어떤 이유로도 무시되고 차별되지 말아야 한다. 평등은 꿈과 희망을 만나면 그걸 성취하고 싶어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자유다. 평등은 치약의 튜브이고 자유는 치약이다. 평등은 '필요조건', 자유는 '충분조건'이다. 인간은 사회란 어마 무시한 전장에서 '패자'가 될 수도 있다. 동등한 출발, 하지만 치열한 경쟁이 스며든 과정, 그게 피워낸 종점이란 꽃은 결코 동등치 않다.

차별을 차이로 승격시키는 게 정치다. 모든 게 동등하다면 그건 '주검'. 평등이 자유를 잘못 살아내는 바람에 봉착한 그 불평등까지 자유가 빚처럼 떠안아야 하는 것, 그건 모두를 빙하기로 몰아가는 '불공정'이다.

평등과 자유, 그 항성 궤도를 따라 도는 두 개의 위성, 그게 공정과 정의. 이 네 개의 회전체가 사철처럼 선순환할 때 자연과 인류의 행복 조건은 비로소 충족되는 것 아닐까. 보수와 진보가 머릴 맞대고 술을 마신다. 주량은 자유롭고, 그 취함은 평등하게 온다.

가끔 '그리스인 조르바'를 창작한 그리스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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