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우리 안의 부족주의

  •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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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8   |  발행일 2022-05-18 제26면   |  수정 2022-05-18 07:15
진영이기주의, 패거리 문화
배타와 차별이 기승 부리면
창조적 에너지 기대 어려워
기득권층 욕심과 손해 감수
부족주의 타파에 앞장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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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밀림에 살고 있는 원시 종족들이 지금도 부족 단위로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 개인과 씨족 그리고 부족이 먼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초기 부족들은 규모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족국가를 만들고 드디어 국민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과거 씨족이나 부족이 담당하던 역할은 이제 질서유지와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심지어는 전통적 덕목이었던 효까지도 가족이나 일가친척의 손을 떠나 국가가 나서주기를 기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국민국가의 일원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부족시대의 습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부족주의 또는 그에 바탕을 둔 행태는 장점이 많다. 소규모 조직 안에서 주어진 일을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구성원의 소속감과 행복감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부족주의로 서로 간에 다툼이 심해지면 전체에 봉사하기보다는 한정된 자원을 특정 부족이 독차지하기 위한 상대방 죽이기에 매달릴 수 있다. 사화나 당파 싸움이 그 예이다. 이곳에서는 공사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진영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끼리끼리 모여 객관적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 읍참마속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내로남불로 밀어붙인다.

부족주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혈연, 지연, 학연이나 직장의 인연을 매개로 또는 이익단체의 탈을 쓰고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면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부족주의 행태에는 보수나 진보의 구분도 없고 중앙과 지방의 차이도 없다.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파 이기주의를 부추긴다. 진보세력들은 이념투쟁 시에나 유용했을 동지의식을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족주의는 이질적 집단 간의 경쟁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큰 틀에서는 이해를 같이 하더라도 부족의 규모가 커지거나 이익을 둘러싸고 다툼이 생기면 이너서클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하위 부족주의가 자라난다.

부족주의의 미덕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내지 못하면 사회비용은 증가하고 공동체는 찢어지며 국가의 미래 또한 어두워진다. 배타와 차별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곳에서는 전체가 뿜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패배한 도시국가의 시민에게도 로마시민권을 주고 유력자들은 원로원 의원으로까지 받아들인 로마는 천년을 지속한 반면 소크라테스도 부모가 아테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민으로 수용하지 못한 아테네는 단명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른 부류, 우리와 다른 가치관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떨어지고 이에 비례하여 갈등은 증폭되고 상대에 대한 분노도 커지는 상황이다. 정치 현장에서는 자기편을 결집시키기 위해 이념 간, 세대 간, 지역 간, 남녀 간에 갈라치기를 하면서 부족주의를 부추기고 악용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사용해서는 안 되는 수단이지만 쉬운 방법이고 이익도 당장 손에 잡히므로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

부족주의 타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먼저 팔을 걷어붙여야 할 주체는 일반서민보다는 자기 것을 지키고 키워나갈 필요가 큰 기득권층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내게 있는 욕심과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부족주의 극복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공동체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자기희생과 헌신이 선행되지 않는 한 부족주의는 극복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부족주의는 우리의 DNA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본성이기 때문이다.

박봉규 (2022 세계가스총회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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