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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항의 옛 이름은 율포로 신라 충신 박제상이 눌지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떠났던 포구다. 항구 끝에 사랑의 자물쇠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재회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세워졌다. |
태양은 뜨겁고 바람은 차다. 빛 드는 구석마다 낮달맞이가 활짝 피어 고개를 까닥인다. 바닷가의 넓은 주차장에는 차박 중인 이들이 나른하게 부동이고, 그릇 씻는 달그닥 소리가 나는 곳은 화장실이다. 몇몇 어른과 아이들이 짧은 방파제와 선양장을 오가며 물빛을 본다. 긴 방파제 너머 테트라포드에 사람의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방파제 벽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사랑海'라 적혀 있다. 그 긴 끝자리에는 하트 모양으로 가슴을 연 빨간 자물쇠가 서 있다. '사랑의 자물쇠'다.
왜국서 순국 박제상 떠나보낸 항구
기다리던 아내는 끝내 '망부석'으로
부부 사랑·재회 기원하는 마음에서
방파제 끝자락 '사랑의 자물쇠' 세워
각진 주상절리 떡가래처럼 포개어져
지각변동 일어난 2천만년 前 신생대
솟구치던 마그마 모습 직접 보는 듯
냇물·바다 교차 하서천 '물빛사랑교'
사랑이 충만하라는 의미 담고 있어
◆하서항 또는 진리항 또는 율포진리항
항구에 정박된 배들이 끼익끼익 스산한 소리를 낸다. 몇몇 횟집과 국숫집은 한산하다. 경주시 양남면의 하서항. 하서4리 진리마을에 위치해 있어 '진리항'이라고도 부르고 옛 이름을 따 '율포진리항'이라고도 부른다. 방파제에 'LOVE'라 조각한 화강석 벤치가 있고 하트 모양의 포토존이 있다. 자물쇠의 휑한 가슴으로 빛이 들고 바람이 분다. 이곳에는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내물왕에서 눌지왕 때에 이르는 시기의 신라는 국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강화했고 남쪽에서는 왜국이 쉴 새 없이 침입해왔다. 392년 내물왕은 고구려와의 화친을 위해 어린 아들 대신 사촌 실성을 볼모로 보냈다. 401년 고구려에 있던 실성이 고국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내물왕이 사망하자 실성은 태자 눌지가 어리다는 이유로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왜와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조카이자 내물왕의 막내아들인 미사흔을 볼모로 보냈다. 412년에는 고구려와의 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내물왕의 둘째 아들인 복호를 볼모로 보냈다.
417년 실성왕이 죽고 내물왕의 장자인 눌지가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은 이국땅에 있는 동생들을 구하고자 했고 그때 왕의 소망을 위해 나선 이가 박제상이다. 그는 고구려로 건너가 장수왕을 설득해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데려왔다. 복호를 본 눌지왕이 왜국에 있는 아우 미사흔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자 박제상은 그 길로 또 먼 길을 떠났다. 그는 왜왕을 말로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로 들어간 그는 신라를 배신하고 도망쳐 온 것이라 했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미사흔을 도망시켰다. 박제상의 거짓을 알게 된 왜왕은 그를 목도에 유배 보낸 후 섬에 불을 질러 전신을 불태우고 목을 베었다고 한다. 왜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그의 아내는 미사흔만 돌아오고 남편은 순직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는 기다리던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었고 넋은 새가 되어 날아가 남편의 넋을 맞아 돌아왔다고 전한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 곳이 율포(栗浦)였다고 한다. 진리마을의 옛 이름이 율포다. 밤나무가 많은 나루였다는 뜻이다. 이후 율포는 진리(津里)가 되었고 사랑의 자물쇠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재회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세워졌다. 자물쇠의 가슴 속에 몇 개의 작은 자물쇠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우리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코로나가 없어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모르지만 알 것도 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다. 모든 기원의 기저에는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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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마을의 주상절리. 약 2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양남 주상절리군은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되어 있다. |
◆진리의 주상절리
대형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그들은 방파제 입구에서 사랑의 자물쇠를 흘깃 지나쳐 북쪽으로 향한다. 펜션과 동네 카페의 환한 벽을 끼고 돌면 곧바로 주상절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위로 솟아오르고 기울어지고 누워있기도 한 여러 모양의 주상절리가 떡가래처럼 포개어져 있다.
경주 양남에는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서 주상절리가 확인된다. 그중 읍천항의 부채꼴 주상절리가 가장 유명하지만 진리마을의 주상절리도 그에 못지않다. 양남 주상절리는 약 2천만년 전인 신생대 제3기 마이오세 때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남부에 활화산이 춤을 추고 지각 변동으로 동해가 열리기 시작했으며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가 점점 동남쪽으로 밀려나던 때다. 벌어진 지각 틈으로 시뻘건 마그마가 솟구쳐 차가운 공기를 만나는 순간 1천도의 마그마는 식어 사각, 오각, 육각, 때로는 팔각형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단의 사람들이 지나간 바닷가에 파도소리 가득한 적막이 흐른다. 바다에는 비인간적으로 번뜩이는 힘들이 무심하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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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1리와 하서4리 사이를 가르는 하서천에 인도교인 물빛사랑교가 놓여 있다. '사랑이 충만하시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위) 양남 주상절리 물빛사랑시장. 양남의 유일한 전통 시장으로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린다.(가운데) 몽돌과 모래가 섞인 하서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다. 200년이 넘은 하서솔밭은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솔밭 앞 콘크리트 옹벽은 계단형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
◆하서항에서 하서해안공원까지, 물빛사랑길
진리마을 남쪽에는 하서천이 흐른다. 천에는 인도교인 '물빛사랑교'가 놓여 있다. 원래는 마을을 돌아나가 31번 국도의 하서교를 건너야 했지만 이제는 천이 바다가 되는 매순간을 내려다보며 하서천을 건넌다. 연꽃모양을 한 물빛사랑교는 '사랑이 충만하시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하구에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다리 밑 그늘에는 큼지막한 텐트가 낮잠 중이다.
다리를 건너면 하서리의 중심마을이다.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 양남면의 중심이기도 하다. 해수탕 건물이 높다. 해안도로를 따라 카페와 펜션이 있고 국숫집 간판을 단 점포에는 낡은 자전거가 가득하다. 장난감 성(城)처럼 알록달록한 건물은 '양남 주상절리 물빛사랑시장'이다. 이곳은 양남의 유일한 전통 시장으로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과거의 재래시장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장날이면 시장 앞 광장에 지역민들이 가득 모인다. 오늘 건물 안 푸드마켓은 불이 꺼져 있다.
해안도로 아래로 몽돌과 모래가 섞인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다. 월파방지용 콘크리트 옹벽이 아주 높아서 옛날에는 바다로 뚝 떨어지는 지형이었나 싶다. 해변에는 파라솔 그늘에 안긴 낚시꾼들이 점점으로 흩어져 있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하서솔밭이 무성하다. 200여 년이 넘은 소나무들이라 한다. 솔밭에 텐트가 그득하다. 솔밭 앞의 콘크리트 옹벽은 계단형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하서해변과 솔밭 캠핑장 일대는 하서해양공원이다. 하서항에서 해안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물빛사랑길'이라 한단다.
붉었다가 푸르렀다가 하얗기도 하고 까맣기도 한 물빛. 공원에 스카프를 쓰고 외투를 걸친 인어가 망부석으로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움이 얼마나 깊으면 망부석이 되나. 오늘 물빛은 푸르고, 저 멀리 사랑의 자물쇠가 선명하게 보인다.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가 직진해 배반네거리에서 우회전한다. 7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다 감포, 불국사 방향으로 좌회전해 직진, 다시 감포방향으로 우회전 해 4번 국도를 타고 간다. 토함산터널을 지나 와읍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나가 대종천을 따라 가면 봉길리 문무대왕릉이 나타난다. 봉길리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피해 우회하는 봉길터널을 통과해 31번 국도를 따라가면 양남면이다. 나아리, 읍천리 지나면 하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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