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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막을 건넌 나비'다. 그리고 그는 비극의 징조를 읽어내는 '사이렌'의 사내. 창녕과 마산을 거쳐 지금은 부산에 닻을 내리고 공사판을 돌며 시만 품고 술추렴이나 하면서 일상을 그럭저럭 견디고 산다. 험악한 일터 때문에 마흔에 '절벽' 끄트머리로 내몰렸다. 이승과 인연을 끊어보려고도 했다. 아내와도 부부의 연도 몇 번이나 지옥을 오르내렸다. 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동면 중이었던 그만의 시(詩)가 그를 구원한다.
그는 오만하고 거만하고 그리고 배짱이 두둑하다. 사내 냄새가 난다. 남몰래 죽음만큼 책을 파고들었다. 국내에선 이렇다 할만한 작가가 보이지 않았단다. 시인으로는 보들레르, 랭보, 엘리어트 정도, 소설도 '까르마조프가의 사람들'을 잉태한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정도라야 직성이 풀렸다. 늘 늑대처럼 혼자 울음의 습작기를 거친다. 하지만 어떤 시인이 되겠다는 야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예지 현대시의 원구식 시인과의 인연으로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시사사)'를 통해 등단한다. 이후 10년간 창세기 같은 시를 적어나갔다. 그 암울하고 써늘하면서도 신화적 상상계를 가진 범상치 않은 그의 시를 본 창연 출판사 임창연 발행인이 창연기획시선 1권으로 묶어 처녀 시집을 발간한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금도 그는 혼자 거북이처럼 삭막한 문단의 변방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암울하고 써늘하면서도
신화적 상상계를 가진 범상치 않은 詩…
처녀 시집 발간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싸늘
그는 혼자 거북이처럼
삭막한 문단의 변방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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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서문에 그는 스스로를 '초장, 중장, 그리고 종장 모두가 암흑이 되어버린 사내'라고 규정했다.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가 괴기스럽고 한없이 허무적이다. 흡사 부산 출신 강은교 시인의 첫 시집 '풀잎', 박기영과 장정일 2인 시집 '성 아침'을 연상시킨다. 시집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아마겟돈의 검은 비가 내리는 지난날을 그는 검정 불같은 시어로 녹여버렸다. 질풍노도로 치닫던 그의 문학적 번민 시기를 총정리한 '사금' 같았다.
지방에서 펴낸 시집이라 그랬을까? 아직 평단의 관심은 무관심 그 자체다.
그가 작가노트를 보내왔다.
'아무리 희미해진 흉터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잊힌 상처나 상실의 흔적만이 아닐 것이다. 식은밥을 삼키면 식은밥이, 울음을 삼키면 울음이 마중 나오는 게 내 몸의 구조란 것을 시를 쓰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나는 흉터 밖과 흉터 안 두 개의 세계에 나누어져 살고 있다. 한밤중에 창을 통해서 본 하늘은 어둡고 깊은 구멍이다. 가장 먼 세계의 정체가 신앙이 아닌 구멍인 까닭도 불편하다. 초식동물은 풀이 가장 무성한 시기에 새끼를 낳는다고들 하는데 풀이 가장 무성한 그 시기에 어린 나는 초식동물을 부러워했었고 나이 든 지금의 나는 죽음에 대하여도 생각한다. 흉터 속 깊숙이 삿된 호흡을 불어넣으며 식물처럼 곱게 살다간 존재들을 떠올리면 어떤 꽃은 필 때부터 질 때까지 흰 꽃이었다. 또다시 저녁이다. 석양 한 조각의 크기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며 비로소 나는 흉터를 어루만지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시의 관대함에 또 하루를 맡긴다.'
빙하기 얼음에 갇혀 있던 그가 부활한 매머드의 입김처럼 보였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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