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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20일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서 열린 한국행위예술 50년 아카이브 개막 퍼포먼스에 출연한 박진형 시인의 퍼포먼스 작품 '박진형 반가사유하는 의자'. |
줄잡아 50년, 시를 쓰고 있다. 1985년 '매일신문'으로 등단했다. 20대부터 그림을 좋아하다 자연스레 화가들과 어울려 다녔다. 2002년 무렵부터 퍼포먼스에 경도된다. '김천국제퍼포먼스아트페스티벌'이었다. 그 결과가 제4시집 '퍼포먼스'(2007·만인사간)다.
시집 '퍼포먼스'에 영감을 준 작가들은 국내에서 이건용, 도지호, 홍오봉, 황민수, 김석환, 심홍재, 윤명국, 이상진, 조성진, 박미루, 서승희, 김은미, 배희권, 고경옥, 리홍재, 박원식, 김헌근 등이다. "퍼포먼스는 몸의 축제이다. 퍼포먼스는 그 어떤 예술보다도 시적(詩的)이다. 퍼포먼스는 20세기의 미래주의, 다다, 액션페인팅, 플럭서스, 누보레알리즘, 해프닝 등 다양한 실험과 변용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예술운동은 한결같이 전통적 인식과 관습을 거부한다. 예술이란 기존 가치에 대한 반역이다. 좋든 싫든 퍼포먼스는 이제 중요한 예술 장르의 하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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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온 제7시집 '물생간' 표지. |
2004년 5월29일 고령 박곡의 화가 이규목 화실 뜰에서 윤명국의 퍼포먼스 '풀밭 위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를 배경으로 넥타이까지 점잖게 맨 정장의 윤명국은 초록 물감 한 동이를 머리부터 확 뒤집어썼다. 관객들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는다. 그걸 보며 '풀밭 위의 사랑'이란 시를 썼다.
올해 서예가 일사 석용진을 기획·디자인 책임자로 앞세워 또 하나의 시집을 패대기쳤다. '물생간(物生間)'이다. 제3차 세계대전 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인으로서 2년 반이 넘게 견디며 아수라의 캄캄지옥 같은 역사를 증언한 셈이다. 이 시집은 '듣다, 보다, 느끼다'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듣다는 코로나19의 타임라인을 따라간 세간(世間)의 시, 보다는 출세간(出世間)인 번뇌시도장, 느끼다는 퍼포먼스 시극으로 오도간(悟道間)의 세계랄 수 있다. 나에게서 출발하여 나로 완성되는 깨달음의 인생 3진법으로 구성했다.
'님하, 도셔오소서!'는 퍼포먼스 시극(詩劇)이다. 구한말 쇠퇴한 조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가 천장암에 머문 추운 겨울날 밥을 빌러 온 문둥이 여인을 선방에 불러들여서 열흘간 함께 지낸 이야기를 시극으로 꾸며본 것이다. 말미에 '누진다초점의 시'란 형식으로 자신과의 대담도 마련했다.
그는 "퍼포먼스가 10년 넘게 행위예술을 보고 시화했다면, 이번에는 코로나19의 시편 속에 퍼포먼스 시를 다시 불러들여 한바탕 시의 퍼포먼스를 벌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와 의미의 중첩과 얽힘, 그리고 병치·충돌·간섭·상응….
그는 이 시집을 두고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갔다 새로 태어난 초신성 같다"고 고백했다. 새로운 박진형, 그 '변곡점'이랄까?
글=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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