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부족한 인내심…"장수하며 화목하게 사는 비결은 火를 참고 또 참는 '忍'을 덕목으로 삼는것"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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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34면   |  수정 2022-07-01 07:48
효행·부부애·형제애가 넘치는 집안
인내·참을성 있어야 사이좋게 지내
참지 못해 불러오는 분노 범죄 증가
노여움의 불길은 '참음'의 물로 꺼야
혈기의 병은 의원에게 치료 하지만
지기의 병은 自修하여 내심으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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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심전(沈銓) 그림 '구세동안(九世同安)'. 장공예의 구세동거(九世同居)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중국 당나라 사람 장공예(張公藝)는 9대가 한 지붕 아래서 화목하게 생활한 집안으로 유명했다. 665년 당나라 고종은 태산에 제사 지내러 가는 도중, 장공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의 집을 방문했다. 고종은 그렇게 장수하며 대가족이 화목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그에게 물었다.

장공예는 예를 표한 뒤 아무 말 없이 단지 참을 '인(忍)'자를 100여 자 써 보여 준 뒤, 고종을 향해 말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인내가 없으면 자비와 효행을 잃게 됩니다. 형제 사이에 참을성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삽니다. 형제의 아내들 사이에 참을성이 없으면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고부 사이에 참지 못하면 효도하는 마음을 잃게 됩니다."

고종은 그 자리에서 장공예에게 작위를 내리고, 그의 아들에게도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건물을 하나 세울 것을 명하고, 친히 '백인의문(百忍義門)'이라는 글자를 써 주며 현판으로 걸도록 했다. 장공예가 죽고 나서도 자손들은 '인(忍)'을 집안의 최고 덕목으로 삼고, 그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백인당(百忍堂)을 세워 제사 지내면서 '인(忍)'을 가훈으로 삼았다.

참지 못해 불러오는 불상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최근에도 국민을 놀라게 한 참사가 대구에서 일어났다. 변호사 사무실에 한 남성이 휘발유를 들고 들어가 불을 질러 무고한 사람 6명을 죽게 만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불을 지른 당사자도 현장에서 함께 사망했다. 범인이 분노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일으킨 참사로 분석되고 있다.

이 같은 분노 범죄가 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참지 못하는 개인이 양산되는 데서 원인을 찾고 있다. 개인적 원인이든 사회적 시스템에 의한 것이든, 사람들이 분노가 심해지고 참을성이 약해져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면서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라도 경중을 파악하지 못하니, 순식간에 성인이 미치광이가 되는구나(造次失輕重 俄然判聖狂).'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1712~1791)이 집에서 부리는 종의 일로 인해 순간적으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쓴 시 중 일부다. 화를 참지 못해 종을 심하게 꾸짖은 뒤, 장공예의 고사를 인용한 명나라 학자 진헌장(陳獻章)의 아랫글이 문득 생각나서 두려운 마음에 시를 써 반성한 것이다.

'노여움의 불길 타오르면 참음의 물로 꺼야 하네. 참고 또 참아도 노여움이 거세진다고 할지라도, 백 번을 더 참아 마침내 장공예처럼 된다면 큰일도 이룰 수 있도다. 만약 참지 못하면 당장 낭패가 닥칠 것이다.'

아래는 율곡 이이의 글이다.

나의 생질 홍석윤(洪錫胤)이 자신의 어머니를 뵙기 위해 떠나려 할 적에 나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석윤 : 제가 학문을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뜻이 굳건히 서지 못하여 공부에는 전념하지 않고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경계할 만한 말씀을 주시면 써서 벽에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보며 저의 게으름을 채찍질하겠습니다.

율곡 : 옥은 쪼아내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 도리를 알지 못하면 사람이 될 수 없으니, 명색이 선비이면서 학문을 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금수 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이다. 이미 금수 되기를 꺼리지 않는다면, 벽에 경계의 말을 붙여 놓더라도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석윤 : 원래 배우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는 경계의 말이 소용없겠지만, 배우고자 하나 뜻이 굳지 못하여 학문이 잘 안 되는 자는 경계의 말을 듣거나 보면 분발할 수 있습니다.

율곡 : 그렇다. 사람에게는 병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혈기(血氣)의 병이고, 하나는 지기(志氣)의 병이다. 혈기의 병은 의원에게 묻고 약을 구하여 외물(外物)로써 치료할 수 있고, 지기의 병은 자각하고 자수(自修)하여 내심으로 치료할 수 있다. 외물로써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그 권한이 남에게 있고, 내심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은 그 권한이 나에게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권한이 남에게 있는 혈기의 병은 치료하려 하면서, 권한이 나에게 있는 지기의 병은 조금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괴이한 일이다.

성심(誠心)으로 몸을 닦고자 한다면 게으름의 병은 근면으로써 치료하고, 욕심의 병은 도리를 잘 따름으로써 치료하고, 몸을 단속함이 엄격하지 못한 병은 장엄과 정중으로써 치료하고, 생각이 산란한 병은 마음을 한 군데 집중하여 잡념을 없애는 주일(主一)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몸에 있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밖에서 구하지 않아도 치료하지 못할 병이 없는데, 어찌 학문이 이루어지지 않을 염려가 있겠느냐.

석윤 : 몸을 지키는 중요한 말을 해 주십시오.

율곡 : 집안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경하며, 글을 읽어 사리를 연구하는 궁리(窮理)를 돕고, 선을 행하여 사욕(邪慾)을 버리고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가기를 구하라. 고요히 있을 때는 생각을 한곳에 모아 잡념을 없애는 경(敬)으로 마음을 곧게 하고, 움직일 때는 사물을 헤아려 사리에 알맞게 하는 의(義)로써 몸가짐을 방정하게 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는 용맹스럽게 하고, 몸을 지키는 데는 끈기 있게 계속하여라.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대화를 마치고 이 말을 써서 그에게 주었다.

이이가 그의 생질을 경계한 글이다. 글의 제목은 '증홍생석윤설(贈洪甥錫胤說)'이다.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의 저술을 남긴 이이는 현실과 원리의 조화와 실효를 강조하는 철학사상을 제시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도 이이가 말한 '지기의 병'에 해당할 것이다. 스스로 그 부족한 바를 알고 자수(自修)하여 내심으로 치료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다.

분노의 요인을 사회적으로 없애 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인내력을 키우는 일이다. 정신적 힘은 어릴 때 대부분 형성된다고 하니, 어릴 때 그런 힘을 충분히 기를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의 인내심이 높아지고, 인내심이 부족한 이들이 줄어들어야 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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