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대통령의 입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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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9   |  발행일 2022-06-29 제26면   |  수정 2022-06-2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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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창원에 두산에너빌러티라는 회사가 있다. 생소하지만 '한국중공업'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분이 많으실 거다. 일전 대통령께서 이 회사를 찾아 관계자의 노고를 치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때의 말이 문제였다. 보도된 것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안 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었을 것"인데, 자연히 '바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전임자를 극복하고 치적을 통해 국민의 복리를 드높이겠다는 대통령의 야망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전직더러 '바보'라는 말을 내뱉은 입이 공개적 자리에 선 신임 대통령의 것이라면 그 광경이 과히 아름답진 않다. 바보와 천재가 있는 장면이 아니라 낮과 밤처럼 그냥 대립해서 존재하는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더 보편적이다.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창세기를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 따위가 대표적이고, 핵발전소의 유용성과 위험성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 문제에 대하여 논객들은 절대 상대를 설복시킬 수 없다.

고압송전탑이 지나가는 동네, 청도 삼평리나 밀양 상동면에 사는 분들은 핵발전소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또 핵발전소를 옆에 두고 있는 부산, 양산 사람들도 후쿠시마 사태를 남의 나라 일로 보지 않는다. 반면 핵발전을 밥벌이로 삼는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처럼 핵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가 어디서 온 건지 알 필요가 없는 분들은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보다 원자력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 핵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의 단가가 핵발전소 폐로비용을 포함한 것인가의 논쟁이나, 핵발전소가 안전하면 서울 한강변에 짓지 송전탑과 선로를 남의 동네에 세우면서까지 외딴곳에 짓냐는 볼멘소리도 마찬가지로 양극단의 목소리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땅덩이가 좁고 게다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만약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터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걱정 때문에 나는 비싼 전기요금을 물더라도 핵발전소가 없는 곳에 살고 싶다.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난다면 여기 사는 나는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지지하는 옆집 아저씨가 나더러 '바보'라고 한다면 힐끗 쳐다보고 자리를 피하든지 그 멱살을 잡든지 할 것이지만 그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핵발전을 지양하고 대체에너지로 돌아선 독일이나 나 같은 겁쟁이는 졸지에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어떻게 대꾸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RE100도 모르는 바보라고 말하진 않겠다. 지적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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