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국민을 추앙해"

  • 박규완
  • |
  • 입력 2022-06-29 20:00  |  수정 2022-06-30 06:51
경제고통지수 21년만에 최고
여야 치킨게임 院 구성 공전
다음달 외유성 출장 수십건
보스만 보는 정치, 국민은 卒
파업과 정쟁…민주주의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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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경제고통지수는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해 산출한다. 5월 우리나라 경제고통지수는 8.4. 21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달 실업률은 3.0%로 작년보다 낮았다. 오롯이 물가의 '거침없는 하이킥'이 경제고통지수를 높인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디스인플레이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회는 민생을 외면한 채 목하 파업 중이다.

 


# 정치도 복합위기
작금의 경제상황을 다들 복합위기로 진단한다. 한데 여의도 쪽을 보니 정치도 복합위기다. 국회는 후반기 원(院) 구성도 못하고 4주째 헛바퀴만 돌리고 있다. 치킨게임을 벌이는 저들에겐 국민고통지수 따윈 안중에 없다. 여야 알력과 대립 원인은 복합적이다. 법사위원장 자리와 '검수완박' 관련 소송, 사개특위 구성 등이 맞물려 있어서다. 파업과 태업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인식 결여도 심각하다. 20대 국회 때도 석 달 넘게 의정활동을 멈추지 않았나. 파업을 해도 세비가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기 때문인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뒤집기,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등 이재명 의원과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윤석열 정부의 칼날도 국회 파행에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는 더 아쉽다. 정치는 '밀당(밀고 당기기)'과 거래다. 빅딜이 불가하면 스몰딜이라도 하면서 접점을 넓혀가야 하는데 지금은 아예 노딜 국면이 지속된다. 반전(反轉) 없는 대척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이 수십 건 예정돼 있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여야 원내 사령탑의 언설도 막장을 치닫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원 구성 협상조건으로 이재명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요구했다"고 주장했고,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일 터. 마타도어 아니면 오리발이다.


# 개그 같은 '심(心) 정치'
"하도 윤심·박심을 팔아 내심 걱정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이 지방선거 후에 한 말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한 후 "권력의 뒤끝 대단하다. 공정도 상식도 아닌 경선"이라며 윤심 개입을 기정사실화 했다. 윤심(윤석열), 문심(문재인), 명심(이재명), 박심(박근혜)은 여전히 정치권을 배회한다. 때론 선거와 정책 이슈의 방향타가 되기도 한다.


'심(心) 정치'는 보스 정치, 계파 정치의 산물이다. 보스 의중(意中)이 후보 공천이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게 '심 정치'의 본질이자 폐해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6·1 지방선거에서 '윤심 마케팅'을 펼친 이유이기도 하다. 왜 '심 정치'에 미혹될까. 당심과 민심에 미치는 보스의 영향력, 보스에 권력이 집중되는 구심력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시선은 보스를 향할 뿐, 국민은 장기판의 졸(卒)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 정치인 국민의 상전인가
그리스의 정치 포퓰리즘이 빚어낸 경제 파탄, 한순간의 춘풍처럼 왔다가 사라진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가 잉태하고 있는 퇴행적 현상을 농축해 보여준다. 장기 공전하는 여의도 역시 정치 퇴행의 현장인가보다. 본업을 팽개치는 국회의원들의 심리는 어떤 상태일까. '아~ 몰랑' 아니면 '케세라 세라'?


존 로크는 "정치인은 시민의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인일 뿐"이라고 했다. 한데 대리인이 황제급 특혜를 누리면서 파업과 정쟁을 일삼는다? 이게 대의민주주의 실체라면 우리는 그 제도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계급이익에 휘둘린 민주주의는 사악하고 무능한 정치체제로 타락할 수 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경고가 홍심을 찌른다.


괜찮은 드라마나 영화는 명대사를 남긴다. "고백 할까요? 사과 할까요?"(태양의 후예).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베테랑).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부당거래). "나 돌아갈래"(박하사탕). "완벽하게 행복해"(별에서 온 그대).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명대사는 "나를 추앙해"였다.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거다. "국민을 추앙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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