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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산 남천면 일대에 걸린 '주민 승소' 현수막 <독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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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남천면에 세워져 있는 '남천강을 살립시다' 안내판 독자 제공 |
경산 지역에서 주민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며 '풀뿌리 주민자치'를 구현한 사례가 나와 주목 받고 있다.
2019년 남천면 A채석장은 기존 사업 부지를 확장하고 채취량을 늘리기 위해 토석채취 변경허가를 신청했지만, 경북도가 불허가하면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대구지법 1심은 '경북도 패소' 판결을 내렸고, 경북도는 검사 지휘에 따라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자 남천면 주민들이 대신 들고 일어나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항소하기에 이르렀고, 1심 판결을 뒤집고 대법원에서 최근 최종 승소했다. 총 154명 주민들이 마지막까지 이름을 올렸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 주민들이 이긴 것이다.(영남일보 6월 20일 6면 보도)
대구고법은 판결문을 통해 "채석 현장에 대한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기존 허가보다 허가면적이나 토석 채취량을 확대하는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자연환경이나 인근 주민들의 생활환경 피해가 더욱 가중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자칫 항소하지 않았다면 1심 판결 그대로 확정될 수 있었던 것을 공익을 지키는 결과로 바꾼 것은 이곳 주민들이었다. 그야말로 '우리 지역 우리가 지킨' 사례인 것.
남천면은 경산시 15개 읍·면·동 중 가장 작은 곳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 2천869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은 '주민의 힘' 만큼은 가장 강력한 지역이라고 자부한다.
남천면의 풀뿌리 주민자치 역사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남천면에는 1970년대부터 묘원, 채석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음식물 처리시설, 건설폐기물처리장, 공원묘지 등 주민 기피 시설이 줄줄이 들어섰다.
작고 고요한 마을에 살던 주민들 사이에선 다소간 피해의식이 생겨났다. 자연은 훼손한 만큼 재해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점에서 당장 닥친 환경 파괴 문제도 큰일이었다. 이에 1990년대 남천 청년회는 더 이상 내버려 둘수 없다며 '남천강을 살립시다'라는 구호를 걸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30여 년 간 보이지 않는 주민 손길로 남천면이 지켜져 왔다. 한 주민은 "30여 년 간 주민들은 생업만큼이나 자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연환경을 지키고, 행복추구권을 찾기 위해 한 마음으로 움직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면민 자체 '환경보존·복원 및 혐오시설 대응 매뉴얼'이 존재할 정도로 노하우도 쌓였다. 현안이 발생하면 즉각 해당 마을 이장을 거쳐 이장협의회 및 번영회의 공동 대응으로 이어지고, 최종 면민 단합으로까지 연결되는 식이다.
이 소송에 앞서 주민들은 2013년부터 5년여 동안 B채석장과 경산시의 법정 다툼에서 경산시의 보조참가인으로서 참여, 1·2심 패소 끝에 최종 승소한 바 있다. 당시 주민들은 1·2심 패소 여파로 자칫 의기소침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대담하게도 대법원행을 결정했다. 주민 C씨는 "당시 소송에 참여한 주민 중 B채석장이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남천면이 우리 고향이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서로 단결이 될 수 있었다"면서 "당시 변호사 선임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 모금을 했고, 일부는 신용대출을 받기도 했다. 또 맥반석 포도축제 티켓을 팔면서 그 수익금으로 빚을 갚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A채석장 소송에서도 '남천면 환경보존 성금 모금'이 진행됐다. 소송 피로감이 쌓이는 상황에서 노인회가 먼저 앞장서 800만 원을 내놓았고 각 단체들과 주민들이 많게는 1천여 만원, 적게는 3~5만 원 가량 십시일반 보탰다. 결과적으로 7천여만 원이 모였다. 대책위가 파악할 때 10년 간 무려 2억 원 정도의 성금이 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상대는 대형 로펌이었지만, 주민들은 채석 허가 연장 등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녔고, 토석채취 분야와 관련한 준전문가가 됐다. 1심 패소 후 검사의 항소 포기 지휘가 항소 가능 기한에 임박하게 내려오면서 자칫 보조참가인으로서의 항소가 무산될 뻔한 우여곡절도 있었다. 하지만 준비가 돼 있었던 덕분에 항소기한 마지막 날 아슬아슬하게 항소장을 제출할 수 있었다.
남천면 주민들은 자신들의 움직임이 '다른 지역 주민은 부러워해도 따라 하지는 못하는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30여 년 환경문제에 에너지를 집중해 온 만큼, 이제는 이웃들과 함께 포도를 잘 키워 양질의 특산품을 생산하는 등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며 "경산에서 가장 낙후된 남천면을 경북도와 경산시가 조금 더 주목해서 바라봐달라. 남천면에도 균형발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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